재활용쓰레기와 호모 사피엔스
재활용쓰레기와 호모 사피엔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9.2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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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재활용쓰레기 대란’의 원인을 알아보다가 중국 영화 ‘Plastic China’를 보게 됐다. 충격이었다. 2016년 중국의 영화감독 왕 지우리앙(Wang Jiuliang)이 만든 이 영화는 3년간 중국의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한다. 영화는 쓰레기더미 속에서 갓난아이를 돌보는 엄마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어린아이들, 지독하게 오염된 하천과 지하수, 불법 소각된 쓰레기더미, 매연으로 가득한 시커먼 하늘까지 폐허가 돼버린 마을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왜 이 작은 마을이 쓰레기더미로 변한 것일까? 이유는 쓰레기 비즈니스였다. 영화는 중국으로 수입되는 쓰레기 컨테이너의 이동을 보여준다. 영국, 미국, 한국,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버려진 플라스틱류 쓰레기가 컨테이너에 실려 선적되고, 바다를 건너 중국 항구로 들어온다. 배에서 내려진 컨테이너는 차량에 실려 신속하게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어느 작은 마을 중간 집하장에 도착한 차량은 쓰레기더미를 토해내고 본격적인 쓰레기 비즈니스가 시작된다.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더미 속에서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 비닐, 섬유, 금속 등을 골라내는 지루하고 고된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쓰레기 수입국이다. 2016년만 해도 전 세계 재활용쓰레기의 절반인 730만 톤을 수입했다.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수입한 재활용쓰레기를 분리·선별하고 다시 원료로 만들어 수출하는 쓰레기 비즈니스를 무려 30년 동안 해왔다.

돈은 벌었지만 부작용이 심각했다. 분리·선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잔여물을 불법 소각하고 매립하면서 심각한 환경오염을 유발했고 마을은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쓰레기가 마을을 집어삼킨 것이다.

중국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2017년 7월 플라스틱, 비닐, 섬유, 금속 등 24개 품목의 수입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2018년 1월부터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일본, 유럽, 미국, 한국 등에서 흘러들어가던 재활용쓰레기가 갈 곳을 잃었고, 세계적인 재활용쓰레기 대란이 시작됐다.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큰 변화는 없었다. 중국을 대신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으로 재활용쓰레기가 흘러들어가고 있을 뿐이다.

최근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란 책을 읽었다. 20여만 년 전 지구상에 출연한 우리 조상 호모 사피엔스가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통해 지구를 점령해 가는 대서사를 이야기한 책이다. 예리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명저라고 생각된다. 책에 심취해서인지 재활용쓰레기 대란을 둘러싼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무관심과 이기심 속에 아픈 과거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5세기부터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으로 이어지는 제국주의의 탐욕은 결국 아즈텍과 잉카 문명을 파괴했고, 호주와 북아메리카의 원주민을 짓밟았으며, 아프리카의 노예를 전 세계로 실어 날랐다. 그러나 왕권이 약화된 17세기 이후에도 제국주의의 비인도적인 식민통치는 건재했다. 돈을 벌고 싶다는 평범한 시민의 투자 때문이었다. 제국주의의 탈을 쓴 동인도회사의 출연은 결코 우연히 아니었다. 돈을 향한 이기심과 밖에서 일어나는 비인도적 행위에 대한 무관심이 제국주의를 지탱하게 만든 것이다.

현대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1500년에 비해 인구는 14배 늘었지만 에너지 소비는 115배나 늘었다고 한다. 치킨과 맥주, 삼겹살과 소주를 누구나 편히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소비하는 닭과 돼지가 어디서 왔는지 고민하는 이는 드물다. 날개조차 펼 수 없는 기계식 양계장에서 사육되고, 비좁은 축사에서 죽을 때까지 임신하고 새끼를 낳아야 하는 고통 끝에 우리 식탁의 풍요로움이 보장된다는 것에 무관심하다. 먹고 싶다는 호모 사피엔스의 동물적 욕구에 충실할 뿐이다. 가축의 비인도적 취급과 대량학살엔 눈을 감는다.

중세 대항해시대에 신항로 개척에 투자한 시민과 무한정 칼로리 소비를 즐기는 현대인을 바라보며 재활용쓰레기 대란을 바로 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무관심과 이기심이 플라스틱 차이나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제2의 플라스틱 차이나가 탄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관심을 가지면 된다. 환경부는 재활용품 배출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읽어보고 실천하면 된다. 또 근본적으로는 적게 쓰고 적게 버리면 된다. 폐기물이 없는 사회 ‘Zero Waste’ 사회를 실현하면 된다.

재활용품 분리·배출이 때로는 귀찮은 일이다. 그러나 이타심을 갖자. 거시적인 시각에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변화하는지 관찰하고 사유하자. 그리고 실천하자. 그게 답이다. 진화를 거듭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김희종 울산발전연구원 환경안전팀장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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