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1호기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下)
월성1호기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下)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9.1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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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뜻밖의 불청객이 찾아왔다. 일요일인 1984년 11월 25일, 끔찍스러운 중수 누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상황의 긴박성과 운전지침서를 어기면서까지 감행한 필사의 노력, 세계사적 대기록을 세운 이면의 생생한 뒷얘기는 이러했다. 정확히 말하면 ‘냉각재 상실 사고’(LOCA=Loss of Coolant Accident) 이야기다. 세계가 깜짝 놀란 이 사고가 당시 국내외 언론매체들로서는 깜깜무소식이었다. 언론통제가 완벽했던 탓이다. 그러나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숨기는 데도 한계가 있는 법. 2011년 3월 11일 전 세계에 생중계된 이웃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사고는 우리의 숨김을 커밍아웃(comming out)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전 자체의 진실고백에 이어 사고 당시의 최고책임자 박정기 사장이 그의 회고록 <에너토피아>에서 사건 전모를 낱낱이 파헤쳤기 때문이다.

사고의 내용은 그 후 한국원자력신문·전기신문·전우회보·울산제일일보 등 언론매체에도 알려졌고, 필자는 목숨을 건 사고수습 공로로 한전 역사 100주년 기념 해에 ‘영웅상’을 받게 되었다. 당시 무모하게 보였던 비밀특공대 몇 명의 목숨 담보는 월성 사고호기를 살려낸 결정적 힘이었다. 그들은 방사능물질인 중수와 각종 핵물질을 온몸으로 먹고, 만지고, 흡입하고, 그 속을 저벅거리면서 수색과 수습을 감행했던 것이다.

흔적 없이 해치우려는 일념 하나로 밀어붙인 특공작전! 그러기에 모든 기록은 비밀에 붙여져야 했다. 하지만 최근에 떠도는 ‘미량의 삼중수소 확산’ 소문을 접할 때면 가소로운 생각에 “너희들이 방사능 맛을 알아?”라는 CF멘트가 떠오르기도 한다. 또 다른 기록을 보자. 사고 다음해인 1985년, 세계 원자력발전소 277기 중 하나인 월성1호기가 ‘이용률 1위’의 영예를 차지한 것은 우리 기술진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한 쾌거였다. 공짜로 얻어진 게 아니었고, 어느 돈키호테 같은 자-필자-의 아이디어와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 덕분이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참으로 숨 가쁘게 달려 왔다. 너를 살리기 위해 기울인 필사의 노력도 보람 없이 이제 영원한 이별을 맞는구나. 이러한 심경을 담은 필자의 글은 <멀쩡한 월성1호기, 왜 죽이나?>(2017.7.3), <살려라, 월성1호기>(2018.1.18)란 제목의 특별기고문으로 지역 신문에 실렸다. 울산제일일보 인터뷰(2018.2.21) 기사에서는 “원자력안전위원회 결정, 대통령도 뒤집어선 안돼”라는 헤드라인이 신문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이제 지구상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너와의 애증(愛憎)은 여기서 접기로 하자. 개인적 바람이 있다면, 멀리 캐나다에서 시집왔다는 흔적이라도 남도록 가칭 ‘캔두 패밀리 동산’을 조성해서 너의 영욕의 일대기를 표지석으로 남겨 후세대가 교훈으로 삼기를 바라는 일이다. 부디 잘 가거라, 월성1호기야!



박재준 전 월성원자력 근무 에이원공업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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