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대한 고찰-‘서치’
디지털 시대에 대한 고찰-‘서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9.13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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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치' 한 장면.
영화 '서치' 한 장면.

 

나와 같은 지금의 40대들이 특별한 이유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동시에 경험한 세대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다고 본다. 사실 그렇다. 내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린 가끔 문방구에서 예쁜 편지지를 손수 골라 편지로 안부를 전했다. 또 주로 TV에 의존해 정보를 얻었다. TV가 막강했던 건 편하다는 것. 그냥 드러누워서 보다 보면 정보와 재미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한 때 TV에는 ‘바보상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그 시절 우린 꽤 수동적이었다. 특히 정보는 그 동안 공부한 대로, 타인에게 들은 대로, 혹은 TV나 신문이 주는 대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제 우리 세대는 TV보다 컴퓨터 모니터와 더 친해져갔다. 정보와 재미가 그 안에 다 있었으니.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생겨나면서 필요한 정보는 그곳에서 스스로 찾아 얻었고, ‘스타크래프트’ 같은 PC게임들이 기존의 당구장과 오락실을 접수해버렸다. 그랬던 디지털 혁명을 2000년대 중반 들어 우린 한 번 더 겪게 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만들어내면서 이젠 그 대단한 컴퓨터를 손에 들고 다닐 수가 있게 됐던 것. 솔직히 말해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나의 뇌는 폰으로 이동한 기분이다. 어찌됐든 이 모든 게 불과 20여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내 나이 올해로 마흔 다섯. 그러니까 난 내 삶의 절반은 아날로그 시대에 살았고, 또 절반은 지금 이렇게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세대가 진정 특별한 이유가 아닐까.

물론 낭만은 아날로그 시대에 더 컸던 것 같다. 모든 게 느리게 가니 주변 풍경을 좀 더 세세하게 감상할 수 있었던 것. 허나 그렇다고 아날로그의 반대가 디지털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시대의 흐름이지 어느 게 더 좋고 나쁨으로 구분할 수는 없다는 뜻. 나만 해도 아날로그 시대는 그립지만 디지털 시대는 고맙다. 그리고 그 고마움은 이 영화 <서치>를 보면서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인터넷과 SNS만으로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선 아빠의 고군분투기를 그리고 있는 <서치>는 그 기저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대한 존경심이 깊이 깔려 있다. 사실 우리는 지금 기능면에서 분신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TV나 신문에 의존하던 아날로그 시절에는 내가 있지 않는 곳에서 사건에 터지면 한 참 뒤에 뉴스를 통해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마치 또 다른 내가 거기에 있는 것처럼. 어줍잖지만 시간여행도 가능하다. 손 안의 작은 폰으로 어디든 과거의 기록을 들여다 볼 수 있고,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 다시 보면서 잠시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이제 미래로의 시간여행만 남겨두고 있는 셈. 이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다. 어찌 존경하지 않으리오.

하지만 이 시대가 진정 위대한 이유는 나쁜 권력이 설 자리가 많이 좁아졌다는 게 아닐까. 주는 대로만 정보를 받아먹던 아날로그 시절과 달리 이젠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든 권력에 대한 감시자가 될 수 있다. 지금 시대에 1980년 5월의 광주 같은 비극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실제로 디지털 혁명 이후 나쁜 권력이 주로 일으켰던 전쟁도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실시간으로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만큼 누구든 침략전쟁을 쉽게 꿈꾸긴 어려울 터. 이제 알렉산더나 칭기즈칸, 나폴레옹은 나오기 어렵다. 물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익명성에 기대어 벌어지는 갖가지 부작용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어쩌겠나. 태양 아래에서는 그 어떤 존재도 그림자가 생기는 걸 피하긴 어렵다.

우리가 인터넷 주소창에 주소를 입력할 때 주로 사용하는 www의 뜻은 ‘World Wide Web’의 약자라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다. 여기서 Web은 ‘거미줄’을 뜻한다. 그렇게 인류는 거미줄처럼 지구 전체에 넓게 퍼진 인터넷을 통해 점점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국민에서 ‘지구인’으로 점차 거듭나고 있는 것.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인기는 바로 그 방증이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로 빌 게이츠보다 스티브 잡스를 더 좋아한다. 영화로 이미 두 차례나 만들어질 만큼 그의 삶이 더 드라마틱하기에. <서치>에서 결국 딸을 찾게 되는 아빠 데이빗(존 조)이 진정 고마워해야 할 사람도 사실은 그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불과 20여년 만에 1만5천곡 정도의 노래와 30여 편이 넘는 영화, 또 백과사전은 물론 권력에 대한 감시행위까지 고작 가로세로 10센티도 안 되는 작은 폰으로 가능하게 해준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면 마음 한켠은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잡스형. 열라 땡큐!”

2018년 8월 29일 개봉. 러닝타임 101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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