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봉(老峰)을 알면 전화앵의 가치를 얘기할 수 있다
노봉(老峰)을 알면 전화앵의 가치를 얘기할 수 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9.09 1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는 그녀를 운명인지, 숙명인지, 인연인지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좋아했다. 남들이 ‘일개 기생’이라 해도, 어떤 이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것도 아니고 이 지역 출신인지 알 수 없는 경주 기생에 대해 우리가 미화 작업을 벌이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추모했다. 드디어, ‘전화앵(?花鶯)’과는 무관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성공개최를 구실삼아 사비를 들여 제1회 전화앵제를 열었다. ‘전화앵제’의 탄생이었다.

조선의 방랑(放浪)시인이 김삿갓이었다면 고려의 주유(周遊)시인은 노봉(老峰)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노봉은 김극기(金克己·1150경∼1204경)의 호(號)이다. 당시 문인들이 그의 시를 평하여 “문장의 표현이 맑고 활달하며 말이 많을수록 내용이 풍부하다”고 했다고 전한다. 이인로(李仁老·1152∼1220)는 김극기의 문집 『김거사집(金居士集)』의 서(序)에서”참으로 난새나 봉황 같은 인물이었다”고 하여 벼슬에 연연하지 않는 고고한 행적을 찬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노봉의 시는 『동문선(東文選)』·『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등에 많이 남아 있다.

그는 40대 후반부터 60대 초반까지 10년 남짓 벼슬살이를 했을 뿐, 생애의 대부분을 전국을 주유하며 가는 곳마다 시를 남겼다. 전국을 유람하면서 아름다움 풍광을 마주치면 기꺼이 시를 쓰고, 원시적인 전설과 설화를 들으면 어김없이 기록으로 남겼다. 경주 출신인 그는 하루 해 거리인 흥려(興麗)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계림(鷄林)에서 흥려로 오는 도중에 전화앵 무덤을 찾아 ‘조전화앵(弔?花鶯)’을 남겼으며, 두서에 있었던 ‘잉불역’을 찾아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태화루에 당도하여 ‘태화루시서’를 차례로 남겼다. 노봉은 동도명기 전화앵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시를 남겼다. 『신증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1530) 경주 고적조에는 전화앵이 죽어 묻힌 장소와 노봉의 시’조전화앵’을 기록하고 있다. 묻힌곳을 서술한 원문만을 인용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悅朴嶺在府南三十里 東都名妓?花鶯所埋之地”‘열박령은 부(府=慶州府)의 남쪽 30리에 있고 동도명기(東都名技) 전화앵이 묻힌 곳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열박령(悅朴嶺)은 경주부에서 30리 떨어진 곳의 고개이며, 현재 울산 울주군 두서면 활천리에서 미호로 넘어가는 고개 언저리이다. 활천마을에는 공교롭게도 전화앵의 무덤을 연상시키는 장승배기 기생묘가 마을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을사람들이 ‘기생무덤’이라 부르는 장소는 ‘장승배기’라고도 불렀다. 앞에는 실개천이 흐르는 나지막한 언덕이 있었다. 수년전에 KCC일반산업단지 조성으로 현재는 주위환경이 확 달라졌다. 과거 보잘것없었던 기생 묘는 새롭고 크게 단장되어 같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2011년 울주문화원(당시 원장 변양섭)은 울산학춤보존회로부터 전화앵제를 이어받아 활천리 전화앵 묘소에서 제10회 전화앵제를 거행했다. 올해 제17회 행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전화앵제에 대한 긍정·부정적 시각이 동시에 존재한다. “울산사람이 아니라 경주사람이다”, “기생이다”, “‘충절의 여인’이란 표현은 가당치도 않다”, “무덤이 검증되지 않았다”와 같은 말은 부정적 견해로 전화앵을 이야기할 때마다 되풀이해서 거론된다. “뚜렷한 기록으로 나타난다”, “무덤이 존재한다”, “마을사람들의 입으로 ‘기생묘’라 전해진다”와 같은 말은 긍정적 견해이다.

긍정·부정적 시각을 아울러 생각해본다. <여지승람> 경주 고적조에 기록되었으니 ‘경주사람’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지만, 크게 보면 울산사람도 경주사람도 아닌 신라사람 혹은 고려사람이라고 정리하자. 다음은 ‘기생이다’는 표현은 본문의 기록대로 ‘이름난 기생’으로 하자. ‘충절의 여인’이란 기록은 없으나 소설 쓰는 이의 인문학적 표현 정도로 이해하자. ‘무덤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부분은 본문의 기록대로 ‘열박령’으로 표현하자. 현재 조성된 묘는 ‘전(傳)전화앵묘’ 혹은 ‘장승배기 기생묘’라고 함께 사용하자.

울주군도 민선 7기 업무가 시작되면서 군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행사의 효율성을 점검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중에 전화앵제도 행사에 사람이 적게 모인다, 새로울 것 없이 반복된다는 등의 이유로 지속성 여부가 도마에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울산학춤보존회에서 전화앵제를 처음 시작할 때는 경주사람, 울산사람으로 나눈 것이 아니었고, 기생이나 효녀 또는 충절의 여인도 아니었다. 본문에 기록된 열박령에 있다는 검증 안 된 기생묘도 전화앵제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오직 김극기의 ‘조(弔)전화앵’ 시어에 등장하는 운학무(雲學舞)의 무삼(舞衫)과 월투가(月偸歌)의 가선(歌扇)을 중심으로 한 신라 기생 전화앵의 춤과 소리를 선보이는 예술행사였다.

전화앵제는 돈 혹은 권력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술에 대한 정서적 접근일 뿐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논개, 매창 등 그 지역 기생의 춤과 소리의 문화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례가 존재한다. 기생문화도 엄연한 문화의 한 범주에 속한다. 무용인으로서 전화앵의 지역적·국악적 가치를 재차 강조하고자 한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