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판에 대한 추억-‘아키라’
해적판에 대한 추억-‘아키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9.06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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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키라’ 한 장면.
영화 ‘아키라’ 한 장면.

 

대학에 입학한 뒤 동아리 하나 정도는 가입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교내를 어슬렁대던 내 눈에 딱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만화동아리였다. 만화는 원래 좋아했고, 보고그리기도 조금 해서 무작정 가입하게 됐던 것. 때는 바야흐로 1993년 봄이었다.

그런데 가입하고 났더니 우리 동아리가 학교 밖으로까지 꽤 유명하다는 걸 얼마 후에 알게 됐다. 3년 전인 1990년 1월,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을 비롯해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 간에 이뤄진 삼당합당을 풍자하는 만화를 그렸다가 당시 안기부로부터 압수수색까지 받게 됐던 것. 전설적인 그 만화를 나도 보게 됐는데, 어린 나이지만 선배들의 기지에 탄복을 금치 못했었다. 만화내용은 2029년 먼 안드로메다 은하계 K행성을 배경으로 레이저총(대권)을 놓고 벌어지는 네 로봇(태우트, 영삼트, 대중트, 종필트)들 간의 암투를 그리고 있다. 백미는 태우트의 레이저총을 부러워한 영삼트와 종필트가 태우트와 합체해 ‘민자트’라는 합체로봇이 탄생하는 순간. 삼당합당을 통해 탄생한 당시의 민자당(민주자유당)을 풍자했던 것이다. 동아리 활동을 남들보다 열심히 하지는 못했던 탓에 대학 동아리와 관련해 내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그 외 출중한 미모에 그림실력까지 탁월했던 동아리 여선배 등 몇 가지가 더 기억에 남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한 선배가 해적판 비디오테이프로 몰래 보여 준 이 영화 <아키라>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인 <아키라>는 사실 일본문화 개방 전인 1991년에 <폭풍소년>이라는 제목의 홍콩영화로 둔갑해 개봉됐다가 들통 나 급하게 상영금지 처분이 내려진 작품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미 해적판(불법 복제) 비디오테이프로 몰래몰래 유통되고 있었고, 선배의 테이프도 그 중 하나였던 것. 하긴 그 땐 해적판도 대중문화의 한 장르처럼 여겨졌다. 저작권 개념도 희박했거니와 단속 자체가 거의 안 되던 시절이어서 영화를 비롯해 만화책은 물론 심지어 음악을 듣는 카세트테이프까지 해적판이 대세였다. 그렇게 해서 본 게 만화책으로는 <드래곤볼>, <용소야(원제:쿵후보이 친미)>, <권법소년 한주먹>, <도시의 욕망(원제:시티헌터)> 등이었고, 1992년 우리나라 가요계의 한 획을 그었던 ‘서태지와 아이들’ 1집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아키라>는 내가 처음으로 접한 해적판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철학적이어서 너무 어려웠던 것. 그저 일본 애니메이션의 놀라운 작화능력에 감탄하며 영화 내용에 대해서는 속으로 ‘뭔가 있긴 있는데’라는 생각만 품은 채 스무 해를 넘게 보냈다. 그리고 얼마 전 난 <아키라>를 다시 보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느낌이 아주 많이 달랐다.

<아키라>는 가까운 미래, 3차 세계대전으로 붕괴된 도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불량폭주족 소년 중에 하나였던 데츠오(사사키 노조무)가 정부의 비밀실험에 휘말린 뒤 생긴 거대한 힘을 주체 못해 점점 괴물로 변해가는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도 나오지만 아키라(Akira)란 ‘절대에너지’를 뜻한다. 그러니까 이 우주를 만든 태초의 에너지를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잖나. 분명 어떤 에너지가 있었으니 우주도 생겨났겠지. 또 그 에너지 덕분에 지금 우리도 존재할 수 있는 거다. 다만 영화가 말하려는 가장 중요한 건 그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흐르면서 형태가 바뀐다는 것. 붕괴 후 세워진 네오도쿄에서는 거대 괴물로 변해 간 데츠오처럼 그 에너지는 기형적인 형태로 변하게 되고, 세상은 다시 창조와 파괴가 반복된다. 이 우주도, 우리들 삶도 늘 그렇지 않나. 이게 20여년 만에 다시 본 <아키라>의 핵심 메시지였다.

사실 권력이란 것도 에너지가 뭉치는 작용으로 볼 수 있다. 그 시절 삼당합당으로 뭉쳐진 에너지는 IMF사태를 거치면서 에너지가 급격히 이동해 최초의 진보정권이 탄생했고, 10년 뒤 다시 보수정권, 또 10년 뒤 진보정권이 탄생했다. 그 과정에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수도 없이 반복됐다. 그렇게 선도, 악도 각자의 질량(에너지)은 계속 보존돼 왔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 이제 거리에서 해적판 카세트테이프나 만화책은 볼 수 없다. 하지만 그것 역시 불법다운로드로 형태가 바뀌었을 뿐 그 에너지는 여전히 건재하다. 그나마 달라진 게 있다면 제법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해적판’이라는 단어는 이제 추억이 됐다는 것. 물론 해적판은 나쁘다. 하지만 불법다운로드보다 정겨운 건 어쩔 수 없다. 뭐. 국정을 농단한 것도 아니고. 2017년 8월 31일 재개봉. 러닝타임 1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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