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남구의 혈구지도·지시식변 실천
울산남구의 혈구지도·지시식변 실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8.26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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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처지로 미루어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것을 ‘혈구지도(?矩之道)’라 하고, 때를 알고 변한 줄 아는 것을 ‘지시식변(知時識變)’이라 한다.

현재 나라경제도 어렵고 지역경제도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밝지 못하고 어깨가 처져 있다. 울산도 마찬가지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울산의 인구가 타 시도로 떠나는 탈울산 행렬이 2년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울산제일일보. 8.23)고 전한다. 일자리를 찾아 타 시도로 떠나는 탈울산 행렬이라는 기사를 읽는 동안 눈먼 땃쥐의 이동이 연상되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차선을 따라 질주하는 낡은 트럭같이 형제자매가 여유 없이 각자도생(各自圖生=제각기 살길을 모색함)이다.

도연명이 41세에 80일간 관직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의 귀거래사 서문에 나와 있다. “내가 집이 가난하여 경전(耕田), 식상(植桑)에도 자급(自給)이 부족한데, 아이들이 방에 그득하나, 쌀독에는 저장해 놓은 곡식이 없고, 생계를 유지함에 있서 의지할 데가 없으며…”라고 구복(口腹)을 말하고 있다.

야곱이 초지를 찾아 양떼를 몰고 다니는 것도 잘 먹이기 위함이다. 노란부리의 제비새끼가 발돋움하듯 쉼 없이 부리를 내미는 행동도 먹기 위함이다. 갓난 고양이새끼가 신음하듯 우는 것도 어미에게 배고픔을 알리는 신호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태복음 6:11)라는 감사 기도도 배고픔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경험하지 않았던가, 곡식창고가 텅 비면 뭇 생명들이 남부여대(男負女戴)로 떠난다는 것을…. 가난이 창문 열고 들어오면 행복은 대문 박차고 떠난다는 것을….

조신(調信)의 부부 이별과 아이들 사별의 중심에는 밥이 있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와 인생을 논하지 마라. 흥부가 놀부 집에 간 것도 밥 빌러 간 것이며, 사흘을 굶으면 담을 넘는다는 속담의 유래도 배고픔이다.

장자도 “의식이 족한 연후에 예절을 안다(衣食足而知禮節)”고 해서 당장 굶어 죽게 생겼는데 세상 다스리는 것만 생각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질책했다. 맹자는 왕도(王道)에 대해 두 가지로 나누어 말했다. 첫째는 경제라고 했다. 오무지택(五畝之宅)에 뽕나무를 심어 우선 자기경제를 살리고, 그 다음 국가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는 학교(?序)를 세워 인륜의 도를 교육하는 것이라 했다. 사람에게는 도(道)가 있는데 배불리 먹이고 따뜻하게 입히고 난 다음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고 했다.

불가(佛家)의 공양(供養) 때 가반(加飯)과 감반(減飯)으로 십시일반(十匙一飯=열 숟가락이 모이면 한 그릇의 밥이 됨)과 일미천근(一米千斤=쌀 한 톨의 무게가 천근이라는 말)을 가르치는 이유도 배고픔과 연관이 있다.

조류(鳥類)의 자연생태계에서도 먹이가 부족하면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벌어진다. 어미 황새는 늦게 부화하여 약해진 새끼를 찾아내서 죽이거나 물어서 둥우리 밖으로 밀쳐버린다. 이를 ‘가족살해’라 한다. 검독수리 새끼들 사이에서는 빠르게 성장한 개체가 더디게 성장하는 동생을 쪼아 괴롭힌다. 괴롭힘에 지친 새끼는 둥우리 밖으로 스스로 떨어져 죽는다. 이를 ‘형제살해’라 한다.

다친 떼까마귀와 함께한 지 10개월째다. 떼까마귀의 주된 먹이는 농경지에 떨어진 볍씨다. 볍씨를 먹기 위해 참새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떼까마귀에게만 먹이를 주었다. 먹을 것이 없음을 깨달은 참새는 이따금씩 가까운 전깃줄에서 기웃거렸지만 결코 내려오지 않았다. 먹이를 감추자 드문드문 찾아오던 참새도 끝내 발길을 끊고 말았다. 아침 일찍, 저녁 늦게까지 찾는 이유는 오직 먹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새는 눈이 생명이다. 먹이를 찾고 포식자·천적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먹이 없는 곳에 참새는 나타나지 않는다. 뱀이 새둥우리를 찾아 새끼새를 먹어치우는 것도 배를 채우기 위해서다. 왜가리가 흰뺨검둥오리 새끼를 잡아먹는 것도 배고픔 때문이다. 새홀리기가 작은 새를 잡아먹는 것도 배고픔 때문이다. 먹이사슬의 중심에는 배고픔이 있다. 오죽하면 부모님 제삿날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현상이 다 벌어질까?

조상들은 논두렁에까지 콩을 심어 배고픔과 가난을 벗어나려고 애썼다. 현재는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다. 지시식변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울산 남구가 ‘2018년 일자리 창출사업 발굴 및 대책 보고회’를 열었다. “남구는 올해 430억원(국비 280억, 시비 150억)이 투입되는 총 52개 에 응모했다. 이 가운데 32개 사업에 사업비 52억원(국비 43억, 시비 9억)이 선정됐고, 일부 사업(8개 44억)은 하반기 선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경상일보. 8.23)

‘혈구지도(?矩之道)’는 역지사지(易地思之=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것)와 같은 의미다. ‘지시식변(知時識變)’은 수시변역(隨時變易=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과 비슷한 뜻이다. 현재의 삶은 주민이 시중(時中=중심)이기에 공감한다.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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