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과목 중에 수학을 가장 싫어했다. 별로 재능이 없었던 탓에 수학은 복잡하고 어렵기만 했다. 그런데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 내게 수학은 철학적으로 다소 존경스러운 과목이다. 아직도 답이라는 게 있기 때문. 여전히 1 더하기 1은 2다. 아니, 그렇다고 해두자.

물론 고등학교 때까지는 산수나 수학 말고도 모두 답이 있었다. 주어진 문제는 대부분 ‘4지 선다형’이나 ‘5지 선다형’이었고, 답안지도 별도로 제공됐다. 또 그 때는 나쁜 일은 하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답이었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어서 법학을 공부하면서부터 난 그 ‘답’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법학을 공부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법학은 사실상 답이 없다. 중요한 문제에 대한 답은 언제나 학계의 ‘다수설’과 ‘소수설’, 혹은 현실 판결인 ‘판례’로 나눠졌다. 우리들 삶을 관장하는 법에 답이 없다는 건 사실 꽤 충격적이었다.

착하게 살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었다. 사회로 나오니 그렇게 살지 않았어도 더 잘 사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그런데 조금 더 지나고 나니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우리는 아직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답을 못 찾고 있더라는 것. 가령 우주는 왜 생겨났고 신(神)은 있는지, 우주의 끝이 있는지, 끝이 있다면 그 밖에는 또 무엇이 있는지 등등. 그런데도 1더하기 1은 아직도 2고, 빛은 언제나 초속 30만㎢의 속도로 달린다. 이러니 내가 이젠 수학을 존경할 수밖에.

그런데 <어메이징 메리>에서 주인공 프랭크(크리스 에반스)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에게는 6년 전 자살한 여동생이 남긴 딸 메리(맥케나 그레이스)가 있었는데, 7살의 메리는 엄마를 닮아 수학 천재다. 천재 수학자의 삶을 살다 일찍 목숨을 끊은 여동생으로 인해 프랭크는 메리를 평범하게 키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 후 메리의 천재성이 알려지면서 프랭크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게다가 유명 수학자이자 메리의 외할머니인 에블린(린제이 던칸)까지 알게 되면서 메리를 빼앗길 처지에 놓이게 된다. 에블린은 세상을 바꿀 수학자로 메리를 키우고 싶어 했던 것. 과연 프랭크는 어떤 선택을 할까.

물론 누가 봐도 답은 정해져 있는 듯 했다. 보트 수리공인 프랭크 곁에서 엄마도 없이 막 자라는 것보다 좋은 환경의 할머니 곁에서 훌륭한 수학자로 크는 게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메리는 삼촌 곁을 떠나길 원하지 않았다. 잠시 할머니와 있으면서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며 신이 났던 메리가 집으로 돌아온 뒤 말한다. “삼촌. 난 할머니가 좋아. 엄마랑 닮았어. 피아노도 있고. 하지만 같이 살고 싶진 않아. 간섭이 장난 아냐.” 삼촌에 대해서는 법원조사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끔은 진짜 재수 없지만 좋은 사람이예요. 내가 똑똑하기 전부터 날 원했거든요.” 아직도 메리가 할머니랑 사는 게 답일까. 이렇듯 이 영화는 ‘답이 있는 수학’과 ‘답이 없는 삶’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며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영화 <콘택트>에서 천문학자 엘리(조디 포스터)가 신학자인 팔머(매튜 맥커너티)에게 신의 존재를 증명해보라고 따진다. 그러자 팔머는 이렇게 되묻는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사랑했소? 그럼 그것도 증명해 봐요.”

솔직히 난 이젠 1더하기 1도 더 이상 2라고 믿지 않는다. 1더하기 1이 2인건 그 때뿐,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2가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결혼하면 2가 되지만 아이를 낳으면 2플러스알파가 되고, 이혼하면 다시 1과 1이 된다. 아마도 이 우주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답은 언제나 초속 30만㎢로 달리는 빛밖에 없지 않을까. 며칠 전 6여년 만에 건강검진을 다시 받았다. 사정이 있어 몇 년 건너뛰다 보니 겁이 나서 계속 건너뛰었던 것. 솔직히 내 나이쯤 되면 그렇다. 삶의 해답? 이젠 그런 거 없어도 된다.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답이거든.

2017년 10월 14일 개봉. 러닝타임 101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