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와 성탄의 정신
보따리와 성탄의 정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2.24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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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들은 엄청난 문명과 문화의 발달로 인하여 분명 편리한 세상이 되어서 다들 편리하게들 산다. 그렇다고 염려와 걱정에서 해방되고 평안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러한 편리한 삶 가운데서 표출되고 있는 것은 더 많은 근심, 걱정, 불만이고 있다.

저마다 나아진 형편을 생각지 않고, 자꾸 더 나은 것만 추구하는 욕구 탓일 게다. 우리가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해야겠지만 그러나 그것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그와 같은 의식부터 개혁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지금도 어려움을 실감하지만 그러나 내년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불안해하고 걱정을 태산같이 한다. 물론 위기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자세를 가진다는 것은 누가 뭐라 할 것인가.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지금까지 나아진 형편을 생각지 않고 불안에 떨고만 있다는 것이다. 초가삼간, 외풍으로 인하여 방안의 걸레가 얼 정도의 집, 그 때 입었던 옷과 신발---, 지금 어떤가? 국민소득이 50불도 되지 않던 때에서 지금은 세계 경제13위라는 경제대국이 되지 않았는가. 하고보면 지금 우리의 문제는 못살아서 불만이고, 정말 어려워서 근심, 걱정이 아니라 끊임없는 욕구를 다스리지 못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오늘은 성탄일이다.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는 아파트나 고급 저택이 아니라 마구간에서 나셨다고 한다. 그런데도 천군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니라”고 노래하지 않았는가. 높은 지위를 가져야 하고, 고급 맨션이어야만 평화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헤롯의 궁전에서는 오히려 살기가 등등했다.

성탄은 얼마든지 마구간에서도 영광과 평화가 깃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꼭 고도의 성장에서만 아니라는 것이다. 낮아짐과 가난 속에서도 평화와 자유가 깃들고, 행복이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고 해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또한 성탄의 정신은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온갖 귀한 것을 풀어놓아버리고 비천한 우리를 감싸주시기 위함에 있다. 어떻게 보면 “보따리”정신이라 하겠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요즈음은 그런 보따리를 거의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보따리보다 훨씬 편리한 가방이 그 자리를 빼앗고 만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을 가방이라는 규격에 맞추어야만 된다. 아무리 필요하고 좋은 것이 있어도 가방이라는 규격에 맞지 않으면 가방에 넣을 수가 없기 때문에 집었다가도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 시대가 삭막하고 무자비한 것은 바로 그러한 보따리를 잃어버리고 지나치도록 까다로운 규격화된 가방문화 때문이 아닐까. 모두가 자기 기준과 규격에 맞춰서 살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문제는 ‘너’가 없어지는 것이다.

나의 규격으로 인해 너를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보자기는 비록 불편하긴 하지만 무엇이라도 주워 담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볼품은 없지만 모나거나 둥글거나 별 상관없이 보따리는 다 두루두루 수용할 수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규격으로만 인간을 대하셨다면 죄인인 인간가운데 누구 하나, 하나님의 기준에 맞을 자가 있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가방대신 보따리를 택하신 것이다. 자신의 모든 규격을 내려놓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심이 또한 하나님의 자신의 뜻을 이루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세상이 어려울수록 가방 대신 보따리를 찾아 가져봄이 어떨까. 어렵고 힘든 자들을 감싸 안을 수 있고, 때로는 자기 보따리를 풀어서 내어 놓아 비천한 자들의 부족한 것을 조금이라도 채워주는 그런 보따리 말이다. 그것이 가진 자의 품위이고, 거룩한 사랑의 의무인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고 성탄의 정신이다.

아무래도 올 성탄은 폼 나는 가방보다 기운 보따리라도 가져야 하겠다. 마치 옛날 시골 오일장을 다녀오시는 어머니의 보따리처럼 말이다.

/ 유석균 병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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