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성탄절인데
내일이 성탄절인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2.23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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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교육 망치는 일제고사 철회하고 전교조 탄압 중단하라’ 이 표어를 보면서 어려서 목격한 이웃집 아이를 떠올린다. 그 애 아버지는 하루 벌어서 하루를 먹고 사는 막노동 일(공산당의 뇌동자)을 하였다. 계절에 따라 가끔은 손수레(리어카, 니야까)에 사과를 놓고 팔기도 하고, 참외와 수박을 팔기(자본주의 장사꾼)도 했다. 그리고 동네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그 아이 아버지한테 잘 못 걸리면 봉변이 아니라 생 떼거지에 꼭 돈을 물어주어야 했다. 겨울철, 자기 집 문 앞의 눈을 치우는 것은 모든 가정의 기본이다. 어떤 사람은 왜놈들이 이것 하나는 잘 가르치고 갔다고도 하는데 하여간 새롭게 생긴 관습이 되었다. 그 아이 옆집에 사는 점잖은 분(그 때에는 시골의 유지에 해당될만한 한학을 하신 분)이 자기 집 눈을 치우고 그 아이 집 앞을 마저 쓸어주고 있었는데 시비가 생겼다. 왜 남의 집 앞까지 참견하느냐는 것이었다. 애들 보는데서 이러지 말고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면서 그 아저씨의 옷소매를 잡았는데 이것을 뿌리치다가 그만 미끄러져 넘어졌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 아저씨의 발악 때문에 어렸던 필자도 밖으로 나가서 목격한 것이다. 왜 눈을 치우려고 하느냐? 자기 집만 치우니까 너무 잘 난 척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해서 그러느냐, 엉덩이와 팔꿈치가 다쳤으니 치료비를 물어내라, 어쩌고저쩌고 가 떠오른다. 그때 이웃집 아이가 내동댕이쳐진 빗자루를 들고 묵묵히 눈을 쓸고 있었다. 그때 필자는 아무것도 몰라서 보고만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눈을 같이 쓸 것을 그랬다.

요즘 울산에는 이런 생떼거지를 부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모두 첨단을 달리는 공업도시의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교양 있고, 따라서 품위 있는 사람들만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전교조의 극히 일부 선생님, 즉 0.5 명의 선생님들만 생떼거지를 쓴다. 본보 23일자(하주화)기사에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기사가 나왔다. 공부 잘 시키려고 국가적 차원에서 시행하는 일제고사의 뜻도 제대로 알지 못 하는 사람들, 좋게 말해서 바람직스럽지 못한, 솔직히 나쁘게 말해 위선적인 사람들이, 교육붕괴실현을 위한 울산교육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고사는 一齊考査이지 日製考査가 아니다.

모두가 한 번에 치루는 시험이지 왜놈들이 만든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다. 교육공공성 실현을 위한 울산교육연대의 사람들은 一齊考査를 日製考査로 오해하고 학력 진단을 위한 검사를 왜 하필이면 일제로 해야 하느냐고 국가에 건의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필자가 어렸을 때 목격한 꼭 이웃집 아이의 아버지와 같은 ‘생 떼’를 쓰는 사람과 같다.

세상의 변하지 않은 진리 중의 하나는 ‘세상살이는 경쟁이다’는 것이다. 아무리 경쟁을 부추기지 말라고 항변해도 그 항변 자체가 경쟁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경쟁 아닌 것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일란성 쌍생아도 저희들끼리 경쟁하면서 성장한다. 하물며 발전을 목표로 두고, 다윈의 진화론을 조금이라도 따른 다면 경쟁의 당위성은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을 학교에서 익히고 생존은 나의 책임이라는 학습경험을 갖게 하는 것이 그토록 잘 못 된 일이라면 장차 이 아이들은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인가? 천사들이 다 해 놓은 것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세상을 보장하겠는가?

회사를 키우는 데에는 전 사원이 합심하여 일을 한다는 엄청난 노력이 필수적이다. 회사를 망하게 하는 데에는 사장 하나의 바보짓이면 충분하다. 교육 잘되게 하려면 부모, 사회, 그리고 교사가 합심하여 엄청나게 노력해야 한다. 교육 망하게 하려면 선생님 하나의 바보짓으로 충분하다.

이러다간 곧 우리 선생님 내쫓아달라고 초등학교 학생들이 오바마에게 편지질 할 것이다.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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