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콘수무스-소비하는 인간
호모 콘수무스-소비하는 인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2.2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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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의 산업혁명은 생산과 소비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산업혁명 이전의 생산은 수요자들의 소비량에 근거해 필요한 만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산업 혁명을 통해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면서 생산과 소비의 관계는 역전이 된다. 수요량에 따른 생산이 아니라, 생산된 재화를 소비시키기 위해서 소비가 강제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때의 강제는 억압적인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무의식적 방식으로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하는 광고. 새로운 상품을 소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유행. 현대 자본주의의 소비 사회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등장하였다.

소비 사회에서 한 인간의 정체성과 인격은 그가 소비하는 물건의 가격과 소비량에 의해 결정된다. 꼭 필요한 만큼 적절하게 소비하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과거 이들은 근검절약하는 검소한 사람으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현대 소비 사회는 이들을 좀스럽고, 볼품없는 사람으로 낙인찍어 버린다. 대신 보다 비싼 물건들을 보다 많이 소비하는 사람들을 능력 있고 품격 있는 사람으로 인정해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바뀌어진지 오래다. 자신의 존재 근거를 소비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소비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과 소비는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결합된 상태로 존재한다. 토마스 하인이 지은 ‘소핑의 유혹’이라는 책에 따르면 오리가 태어나자마자 헤엄치는 법을 익혀야 하는 것처럼, 현대인들 역시 태어나자마자 쇼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현대인들은 이미 과거의 자급자족적 삶에서 벗어나 있으며 소비를 통해서만 필요한 각종 재화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자라난 현대인들은 어느덧 소비 그 자체를 즐기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작은 생필품 하나를 사든, 고급 의류나 가전제품 등을 사든 그 행위 속에는 단순한 구매 이상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물건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기호와 목표가 드러나고 타인과의 여대가 이루어지며, 구매를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를 사러갈 때 사람들끼리 모여서 왁자하게 쇼핑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꼭 무얼 사지 않아도 그런 쇼핑에 동참하게 되는 것 자체가 즐거운 놀이로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소비할 수밖에 없으며,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더 나아가 소비 그 자체를 즐기는 ‘호모 콘수무스(homo consumus)’ 즉, 소비하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호모 콘수무스로서의 삶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불가피한 숙명인가? 이제 인간의 삶은 소비라는 단어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작은 해답을 소개한다.

미국의 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 부부는 미국 버몬트의 작은 시골로 들어가 살았던 20년 동안의 기록을 바탕으로 ‘조화로운 삶’이라는 책을 썼다. 시골로 들어가기 전 그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본주의의 소비 지상주의가 인간이 지녀야 할 유적(類的) 본성을 파괴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스스로 시골마을로 들어가 살았었다. 책에 따르면 그들은 손수 집을 짓고, 곡식과 채소, 과일을 가꾸어 먹었으며, 반나절의 노동 후 남은 시간은 자신을 위해 사용하였다고 한다. 침묵과 고독을 토대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서.

책의 끝 부분에 니어링 부부는 “삶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은 소유와 축적이 아니라 희망과 노력이다.”는 말을 남긴다. 소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평생 가슴에 새겨두고 음미할 필요가 있는 구절임에 틀림없다.

/ 남대호 학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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