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 산책] 순망치한(脣亡齒寒)
[태화강 산책] 순망치한(脣亡齒寒)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2.2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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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도 예년과 다름없이 수많은 사건과 기억들을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넘어가고 있다. 좋은 일도, 즐거운 일도, 나쁜 일도, 슬픈 일도 있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면 언제나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어떤 사자성어(四字成語)가 어울릴까 생각하게 한다.

‘순망치한’이라는 사자성어가 문득 떠오른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서로 이해관계가 밀접한 사이에 어느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그 영향을 받아 온전하기 어려움을 이르는 말이다. 입술과 이는 서로 이웃하여 아주 가까운 사이다. 올 한해의 경제위기와 맞아 떨어지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된다.

올해의 가장 큰 화제 거리는 뭐니 뭐니 해도 올 하반기에 불어 닥친 글로벌금융위기다. 전 세계 경제 질서를 흔들리게 할 정도로 지구촌 구석구석을 강타하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 된 대형금융회사들의 부실운영이 그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인의 경제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 나라의 경제문제는 그 나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지구촌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한 나라의 경제위기가 이웃 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를 수렁에 빠져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의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국 내의 경제만 조금 흔들렸을 뿐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현대사회는 그것이 아니다. 전 세계의 경제가 한 묶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봐야 한다. 서로 자국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뿐 아니라 수입과 수출을 하고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따로 생각 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경제가 기침을 하면 일본경제는 감기가 걸리고, 한국경제는 독감에 걸려 사경(死境)을 헤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기업체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얘기는 바로 구조조정이다. 그 속에는 투자비를 줄이고, 원가절감을 하고, 영업활로를 개척하는 등의 대책이 나오지만 그것들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러나 가장 쉽고 빠른 시간에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반대로 어떤 중소기업은 공장이 문을 닫아 버려 자동적으로 일터가 없어진 경우도 많다. 이렇게 정리해고를 당한 경우와 회사의 도산으로 인해 실업자가 양산되는 현실이다. 그들은 다른 직장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보아도 쉽지 않다. 그 쪽도 사정이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순망치한이다.

직장 구하기를 포기하고 자영업으로 눈을 돌려 보아도 녹록치 않다. 수 년 간에 걸쳐 한 직장에서 아침에 출근하여 저녁이면 퇴근하는 정해진 일만 했던 사람들이라 사회에서의 자영업이 쉬울 리가 없다. 그들은 마치 기름만 주면 잘 돌아가는 기계처럼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세울만한 기술도 없고 자본금도 넉넉지 않다. 마땅히 할 일은 없고, 자식들은 한창 공부를 해야 하는 나이여서 하루하루가 바쁘다. 따라서 돈을 벌어야 하고, 당장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다급함 때문에 식당이라도 시작해 본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이 없는 터라 여러 손님들의 입맛을 맞춘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한 달 정도는 그럭저럭 지나가지만 두 달이 지나고 그 이상의 세월이 지나면 적자가 서서히 발생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적자폭이 점점 커져 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결국에는 투자비도 건지지 못하고 가게를 정리하게 되면 퇴직금을 공중으로 날려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 빚까지 떠안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순망치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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