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바람, 눈, 음악, 그리고 검(劍)-‘스트레인저:무황인담’’
비, 바람, 눈, 음악, 그리고 검(劍)-‘스트레인저:무황인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7.26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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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트레인저:무황인담' 한 장면.
영화 '스트레인저:무황인담' 한 장면.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계곡. 바람을 맞이하는 이방인의 낯빛이 어둡다. 지루하기 그지없는 행군 속에서 그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 잠시 후, 한 무리의 도적들이 나타나 습격을 하자 이방인의 얼굴엔 비로소 웃음기가 돈다.

심장을 뒤흔드는 음악소리가 계곡 깊숙한 곳까지 울려 퍼지고 도적들이 쏘아 올린 화살들이 쏟아졌지만 손에 검(劍)을 든 이방인의 웃음기는 도무지 가시질 않는다. 시체를 방패삼아 계곡을 오른 그의 앞에 펼쳐지는 살육의 잔치. 딱 한 마디 밖에 나오질 않더라. “멋있다!” 그의 이름은 라로(야마데라 코이치). 중국 명(明)나라에서 건너왔지만 서융(西戎)인, 그러니까 금발의 이방인이었다.

시절은 일본 전국시대. 일본에도 이방인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나나시(나가세 토모야). ‘이름 없는 무사’라는 뜻이다. 남만(南蠻)인으로 염색을 하고 다녔지만 그의 머리색은 온통 붉다. 전국시대 막부 무사로 살육에 앞장섰던 그였으나 지금은 검(劍)을 봉인한 채 자책하며 떠돌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두 이방인(Stranger)의 만남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허나 같은 검(劍)이라도 둘은 달랐다. 라로의 검이 살육을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면 나나시의 검은 이제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삶이 허망하긴 마찬가지. 애초에 둘 다 삶에 대한 애착은 없어 보였다. 하물며 돈과 명예 따위야.

결국 작은 도랑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둘은 처음 마주친다. 직감적으로 고수의 기운을 알아차린 라로가 재미를 위해 싸움을 걸지만 나나시는 끝까지 검을 뽑지 않는다. 그래도 밀리지 않았다. 이 영화, 폼 한 번 제대로 난다.

이제 둘의 싸움은 최후를 향해 질주한다. 이름 없는 숲 속 한 켠. 술에 취하듯 허무주의에 취한 눈이 소복이 내리고, 몹시도 차가운 바람이 날카로운 검처럼 살을 파고드는 그런 날이었다. 금발머리 이방인의 눈빛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빛이 나고, 마침내 봉인을 뜯어버린 이름 없는 무사와 제대로 마주한다. 소년을 구하려다 지친 나나시에게 라로는 “먹어라”면서 통증을 없애는 약을 그의 발 아래로 던져 건네지만 나나시는 “통증이 있는 게 살아있는 것 같다”며 약을 거부한다. 그런 그에게 라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좋아. 아주 좋아. 더욱 네가 좋아졌다.” 그랬다. 애초에 이들의 대결은 승부 따위로는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어느 새 적막은 바람까지 삼키고, 둘만 남은 세상엔 더 이상 눈조차 내리지 않는다. 바람과 눈조차 숨죽이며 둘의 대결을 지켜봤을 터. 이내 삶의 먹먹함은 둘의 입김으로 데워지고, 서로를 노려보는 허망한 눈빛은 검의 날카로움도 이겨낸다.

첫 합(合)부터 뿜어져 나오는 검과 검의 불꽃. 허무주의가 불꽃으로 바뀌는 그 순간은 차라리 삶의 현장이었다. 어떤 영화는 가끔 한 편의 긴 시(詩)나 뮤직비디오 같다. 아니, 잔인하지만 아름다운 그 경지는 어떤 말로도 형언하기 어렵다. 이 영화가 그렇다. 그저 비와 바람, 눈과 음악, 그리고는 검(劍)에 취해버린다. 그 취기에 줄과 줄, 칸과 칸 사이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이 글에 당신도 취해가듯이. 훗.

검은 총보다 멋있다. 돈이나 명예보다는 낭만이 더 멋진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내가 영화 속 라로와 나나시에게 잠시 빠져든 것도 그런 연유일 터. 허나 그렇다 해도 현실은 멋대가리 없는 총의 시대. 오늘도 수많은 낭만들은 어느 이름 없는 포수가 쏘아올린 차가운 총탄에 쓰러져 간다.

2009년 3월 12일 개봉. 러닝타임 103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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