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 하지 말자”
“불안해 하지 말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2.10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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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1년 12월 25일 성탄절 오전 9시30분. 건국이래 최대의 화재사건이 서울 충무로 대연각호텔에서 발생했다.

이날 화재로 167명이 목숨을 잃었다. 1층에서부터 시작된 불은 10시간 동안 최고 위층까지 모두 태워버렸다. 당시는 고층건물화재에 대비한 고가 사다리 소방차가 없었기 때문에 대통령 전용헬기, 육군항공대와 공군, 미8군 헬기까지 동원된 대 참사였다. 유독가스와 화염을 피해 고층에서 뛰어 내리는 투숙객들의 처참한 모습이 전국에 TV로 생중계 돼 충격은 더욱 컸다. 그런데 11층 객실에 남아 10시간 동안 끈덕지게 버틴 사람이 바로 당시 주한국 중국공사 여선영씨 였다. 그는 화염의 열기속에서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60대의 몸으로 고통을 참아가며 가끔씩 창가에 나타나 손을 흔드는 여유까지 보였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메트리스를 안고 뛰어 내렸거나 객실속에서 우왕좌왕 하다 유독가스에 질식돼 쓰러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삶의 의지를 버리지 않고 끝내 버텨 기적처럼 구출된 ‘만만디’의 대표적 인물이였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많은 한국사람들은 대륙적인 기질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 한 개인의 특성이라기 보다 오랜 세월을 통해 습득한 그 무엇-굴곡의 역사, 끊임없는 분열과 통일, 홍수와 가뭄, 하늘을 덮는 메뚜기떼와 같은 천재지변을 묵묵히 이겨내 온 민족성을 그에게서 느낄수 있었다. 1971년 유엔에서 추방돼 국제적 고립상태에서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았을때 대만은 ‘莊敬自强 處變不驚(장경자강 처변불경)’이라고 했다. 즉 ‘주위의 변화에 대해 놀라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의 중국 개방화를 이끈 텡샤오핑은 한국인의 ‘빨리, 발리’ 정신을 배우라며 ‘만만디’를 버리라고 했다. 혹자는 한국인의 급한 성정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는 오히려 ‘본 받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빨리, 빨리’해주지 않으면 불평, 불만이 터져 나오고 그런 수요자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제품의 질을 개선하다 보니 한국이 ‘아시아의 용(龍)’ 중 한마리가 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였다.

요즘 중국을 다녀 온 사람이면 누구나 중국인의 ‘만만디’를 부정한다고 한다. 본인이 답답할게 없으면 그정도 배짱은 누구든지 부릴 수 있는 것이라며 웃고 넘긴다는 것이다. 중국인도 자신이 불리하면 ‘빨리, 빨리’해야 하는데 그렇치 못하다는 것이 텡샤오핑의 비판이였다.

서양인들 보다 동양쪽이 소문에 더 민감하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 3국 중에선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민감하다.

구한말 고종 25년(1888년) 서울장안에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민간에서 몇몇 아이들이 연쇄 유괴됐는데 ‘일본인들이 어린이들을 사서 요리해 먹는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아 백성들이 동요하기 시작한 사건이였다. 물론 이는 당시 중국이 지원하는 수구세력과 일본이 지원하는 개혁세력들이 만들어낸 ‘조작’이였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조정에서 “그 소문은 거짓이니 경거망동 할 시 엄벌에 처할 것”이란 임금의 전교까지 내렸지만 소용없었다. 공작도 문제지만 이에 뇌화부동된 백성들도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최근 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율을 2.2%로 예상했다고 한다. 또 골드만 삭스는 기존에 제시했던 3.1% 전망치에서 1.8%로 하향조정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심지어 JP모건의 경우는 1.5%로 내려 잡기도 했다. 이런 전문기관의 예상치를 완전히 무시하란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에 놀라 ‘경거망동’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외국의 평가기관들도 ‘이런 예상치를 발표하면 한국인이 어떻게 반응 할 것인가’ 정도는 잘 알고 있다. ‘빨리, 빨리’ 문화가 결코 우리의 단점일 수만은 없듯이 그들의 수치 발표에 불안해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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