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 지도 일지
등교 지도 일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2.10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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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 적어 두었던 등교지도일지 한 편을 꺼내 본다. 세월이 흘러도 학교는 진화하지 않았다. 해묵은 일지가 여전히 현장감을 갖는다.

1. 아침에 정문 등교지도를 하다 보면 무력감이 든다. 교복 단속은 교육이 될 수 없다. 교통경찰의 단속처럼 다만 단속일 뿐이다. 그러나 교통 법규는 학교의 선도규정처럼 허술하지 않다.

단속의 명분이 매우 뚜렷하다.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면 우리 모두의 삶이 불편해진다.

만약 명분이 뚜렷하지 않은 규정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고쳐진다. 그러나 학교의 생활규정은 다르다.

학생들은 교복을 교묘히 변형시킨다. 속옷, 셔츠 색깔, 교복의 형태, 입는 양식 등의 변형을 보면 어떤 학생들은 교복 규정을 위반하는 재미로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복 저고리 안에(바깥이 아니고 안이다) 모자까지 달린 두툼한 외투를 입은 것은 결코 그냥 입다 보니 그리 된 것은 아니다.

용의복장 단속은 분명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지도도 아니다. 지도라는 것도 일반인의 불편을 줄인다는 목적은 있어야 한다.

옷을 입은 품이 아무리 단정하고 참해 보여도, 교복 저고리 대신 외투를 입었다면 복장 위반이다.

V자형 재킷을 입었어도 바깥 동복 저고리를 여며서 닫아 버리면 모른다. 단지 어쩌다 열어 놓았을 때 눈에 보이면 그것은 복장 위반이 되는 것이다.

교복을 입은 상태가 아무리 지저분해도 블라우스와 조끼와 저고리, 그리고 치마를 갖추어 입었다면 복장 상태는 양호한 것이다.

오늘 아침 밤색 재킷을 차분히 차려 입은 여학생의 품은 세련돼 보였다. 우아하고 성숙한 분위기의 차림새였지만 교복 저고리를 입지 않았으니 지극히 불량한 복장으로 분류된다.

이게 교사가 할 일인가? 이러고도 1교시 문학 수업에서는 인간 정신의 자유를 발현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교사는 일관성을 외면하고 살기 어려운 존재다.

2. 단속에는 말이 필요 없다. 그냥 “저기 서 있어.”로 끝나야 한다. 왜 이런 복장을 하고 왔느냐고 묻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온갖 변명, 애매해지는 한계 속에서 단속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니 나는 직업적 습관인 물음을 버리고 한 마디로 처리해야 한다. “저기 서 있어.” 그런데, 이유를 묻지 않는 자가 더 이상 교사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정해진 규정은 지켜야 한다. 그렇다. 그런데 학교는 규정의 엄정성을 가르치기 위해서 불합리한 규정을 존속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은 때가 있다.

어기고 싶은 규정을 두고 단속해야만, ‘정해진 규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말의 엄정성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학교 문화는 단속할 거리가 없어지면 교육 활동이 없어지는 문화다.

교복 규정이 사라진다면 복장 단속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교도 옷을 멋있게 입는 방법을 가르치게 될까? 분명 현재까지의 한국 학교에서는 ‘옷 멋있게 입기’는 교육적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 버리는 짓이다.

우리 사회의 교복 문화에는 ‘단정히’만 있고 ‘멋있게’는 없다. 우리 사회의 학생들은 옷의 멋과는 담을 쌓아야 한다.

옷의 멋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그러나 학교에서 ‘옷의 멋’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불순하다.

모든 사회가 다 그럴까? 견문이 좁은 나는 알지 못하겠다. 견문이 넓은 이들에게 물어나 봐야겠다.

/ 서상호 삼산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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