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학의역사산책]아메리카는 콜럼버스가 발견하지 않았다
[박정학의역사산책]아메리카는 콜럼버스가 발견하지 않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6.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때는 학교에서 “아메리카 대륙은 콜럼버스가 발견했다”고 배웠고, 그렇게 시험답안을 작성했어야 했으며, 지금도 일부 교과서에 ‘신대륙 발견’이라는 용어가 살아 있다. 조금만 차분히 생각해 보면 우스운 생각이 들게 된다. ‘객관적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사람 콜럼버스 일행이 산타마리아를 비롯한 세 척의 범선을 끌고 스페인의 팔로스 항을 떠난 지 33일 만에 서인도 제도의 산살바도르 섬에 도착한 것이 1492년 10월 12일 새벽 2시 경이었다.

그가 항해를 한 목적은 신대륙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보석과 향신료를 찾아 동양으로 가려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우연히 여기에 닿았을 때 그곳은 무인도가 아니라 원주민들이 이미 터를 잡아 살고 있었다.

그 원주민들도 분명히 사람이니 아메리카 대륙은 그들이 발견한 것이지 콜럼버스가 발견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선생들은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쳤을까? 나는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볼 때 ‘신대륙 발견’이니 그렇게 부른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비주체적인 사고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 역사를 보면, 고려 후기부터 사대사상이 싹터, 동북아 역사는 물론이고 우리의 역사조차도 우리의 시각이 아닌 중국의 시각으로 보았다. 중국 사서에 나타난 ‘조선’은 그들의 땅인 황하 하류 또는 하북성 지역에 있던 ‘조선현’을 가리킨다. 이를 고조선인 줄 잘못 해석하여 중국인 기자가 고조선에 와서 법과 예절을 가르쳤다면서 기록과 전혀 관련이 없는 평양 지역에 기자묘를 만들기도 했으며, 그 40여대 후손인 기준과 위만의 조선, 이를 정복하고 한나라가 세운 네 개의 군(한사군)이 모두 평양지역에 있었다는 논리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고, ‘소중화’라고 하여 중화족의 일부라는 것 자체에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사대사관에 ‘실증주의’라는 도구를 붙여 ‘실증사학’이라는 허구적 논리를 만들어 우리 겨레와 겨레 얼을 말살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한 일제의 ‘식민사관’이 지금도 그대로 역사학계를 장악한 탓에 교과서에도 그렇게 기술되어 있다.

우리 역사는 우리 눈으로 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문화가 들어왔을 때는 중국인의 눈으로, 일본문화가 강요되었을 때는 일본인의 눈으로 보아 왔다. 또 광복 후 서양문화가 들어온 이후에는 과학문명 외에 역사까지도 서양인의 눈으로 보게 되었고, 심지어 우리 고유의 추대와 화백제도 등 뛰어난 우리식 민주주의를 버리고 서양의 자유민주주의만을 민주주의로 보아 ‘민주주의가 4·19 이후에 자리 잡은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지금, 세계가 1% 대 99%라는 극단적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이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등 다양한 분야의 우리 문화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일군 우리 겨레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요즘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가르치듯,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항로를 개척’했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제는 서양인·중국인·일본인의 눈이 아닌 나의 눈으로 우리 역사를 보는 역사교과서가 만들어져야 한다.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우리 민족 저력의 뿌리가 포함된, ‘나’의 눈으로 보는 우리 역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의 시각만이 옳다거나 우리 것이 가장 뛰어난 것이라는 국수주의적 시각이 아니라, 내가 가진 우리의 소질과 장점을 바탕으로 세계와 어우러져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객관적 시각으로 우리 역사도 보아야 하고, 세계화의 논리, 경쟁의 논리도 이해해야 한다.

세계화는 세계가 ‘똑같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의 개성을 가지고 ‘더 큰 하나로 어우러지는 흐름’이다. 따라서 나의 특징, 나의 시각을 가질 때 세계화에도 떳떳하게 참여하고 주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정학 전 강원대 교수, 역사학 박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