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재평가돼야 하는 이유-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
이 영화가 재평가돼야 하는 이유-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
  • 이상길 기자
  • 승인 2018.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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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의 한 장면.

2016년 개봉작으로 DC의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을 알리는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이 관객들로부터 욕을 먹었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서로 죽일 듯이 싸웠던 배트맨(벤 애플렉)과 슈퍼맨(헨리 카빌)이 화해를 하게 됐던 계기가 너무 어이가 없었던 것. 서로 죽일 듯이 싸우던 둘은 엄마 이름이 ‘마사’로 서로 같다는 걸 알게 되고는 화해를 하게 된다.

마블의 <어벤저스>에 맞서 DC의 <저스티스 리그>도 드디어 시작되는구나라는 기대감으로 극장을 찾았지만 당시 이 장면에서는 나 역시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2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 얼마 전 다시 봤더니 그렇지가 않더라. ‘내가 영화를 잘못 봤구나’라는 생각이 급습했고, 그래서 지금 마블에 심하게 밀리고 있는 DC의 부활을 응원하며 이 글을 쓰게 됐다.

<어벤져스>에서도 처음 슈퍼히어로들이 만났을 땐 서로 쌈박질을 했지만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인 이 영화에서 배트맨과 슈퍼맨 간의 싸움은 조금 철학적으로 봐야 한다. 영화 속에서도 자주 언급되지만 다들 알다시피 슈퍼맨은 ‘신(神)’에 비유된다. 우주에서도 생존할 수 있고, 시간까지 과거로 되돌릴 수 있으니 능력치로 따지면 분명 신과 가깝다.

반면 배트맨은 ‘인간(人間)’이다. 원래 배트맨은 슈퍼히어로로 보긴 어렵다. 초능력이 없기 때문. 다만 격투술과 막대한 부(富)를 토대로 만들어진 최첨단 무기들이 그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따라서 배트맨과 슈퍼맨 간의 싸움은 결국 신과 인간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

이제부터는 이유가 중요한데 이들 둘 사이에서 싸움을 먼저 건 쪽은 배트맨이었다. 즉, 인간이었다. 배트맨은 어릴 적 자신의 행동으로 엄마(마사)가 세상을 뜨면서 어찌 보면 평생 신을 원망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엄마를 구하지 못한 죄의식과 함께 왜 자신이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신에게 물어보고 싶었을 터. 그 무렵 그의 앞에 사람들로부터 신으로 불리는 슈퍼맨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슈퍼맨은 정의, 즉 선(善)을 위한 자신의 싸움 속에서 그 파편을 맞고 죽어가는 선량한 시민들에게는 무관심했고, 그게 배트맨을 분노케 한 것이다. 슈퍼맨의 유일한 약점인 크립토나이트를 무기로 만들어 그를 초주검으로 만든 배트맨은 그에게 “넌 신이 아냐”라며 신에 대한 분노를 간접 표출한다. 하지만 죽음의 위기에 처한 슈퍼맨의 엄마도 이름이 마사라는 것을 알게 된 배트맨은 화해를 한 뒤 그 때 구하지 못한 엄마를 대신 구하러 가게 된다. 그제야 배트맨도 구원을 받게 된 셈이다. 무엇보다 그 전부터 배트맨의 조력자인 알프레드(제레미 아이언스)는 슈퍼맨을 증오하는 배트맨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조언을 했었다. 뜬금없이 화해한 건 아니라는 뜻. 이제 이 작품이 좀 용서가 되지 않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배트맨이 슈퍼맨과 대결을 하면서 말한다. “너의 부모님은 네가 특별하다고 가르쳤겠지. 네가 지구에 온 이유가 있을 거라고. 난 부모님에게서 다른 걸 배웠다. 아무 이유도 없이 길에서 죽는 것. 세상은 본래 악한 것이라는 걸 배웠지” 살면서 왜 우리가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신에게 물어보지 않은 사람 그 누가 있을까. 그러니까 배트맨이 어릴 적에 강도의 총에 맞아 부모를 모두 잃은 건 인간의 모든 고통을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루터도 말하지만 배트맨의 슈트는 온통 검다. 배트맨은 인간을 대표하고 인간의 삶은 고통스럽기에 그렇게 검은 것이다. 반면 슈퍼맨의 슈트는 파랗고 빨갛다. 하늘과 태양 같다. 영화 속에서 악당 루터는 아예 대놓고 말한다. 둘 간의 싸움은 인간과 신, 밤과 낮, 검정과 파랑의 대결이라고.

마침내 슈퍼맨은 죽음을 맞이한다. 둠스데이(마이클 새넌)라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악마를 무찌르다 죽게 된다. 악마는 언제나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 핵무기를 생각해보라. 영화 속 루터도, 철학자 니체도 “신은 죽었다”고 했지만 결국 그는 인간을 위해 죽은 셈. 하지만 얼마 후 슈퍼맨은 다시 부활한다.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가 아니던가. 아무튼 슈퍼맨의 묘지석엔 이런 글귀가 적힌다. “슈퍼맨을 찾는다면 주위를 둘러보세요.” 그렇게 낮과 밤, 파랑과 검정, 신과 인간의 대결은 신의 고귀한 희생으로 마무리된다. 영화 속 슈퍼맨은 로이스(에이미 아담스)라는 인간을 사랑했다. 결국 그분(神)도 인간을 사랑하시겠지.

2016년 3월 24일 러닝타임 151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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