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단상
5월의 단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5.1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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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노랑 새싹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14년 전 어느 봄날, 양산의 어느 학교에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그 학생은 언제나 한 아름의 장미 꽃다발 옆에 수줍게 숨은 안개꽃처럼 조용했다. 수줍음이 많아 말을 할 때는 언제나 얼굴이 붉어지던, 그래서 눈에 쉽게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그 아이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3월에 입학한 이후로 조·종례 시간이면 언제나 담임교사인 나를 보며 수줍게 미소 짓는 모습 때문이었다. 수업시간마다 조용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애쓰던 여자아이, 청소시간에도 조용히 맡은 구역을 쓸곤 하던 천상 모범생 같은 여자아이. 그것이 그 아이의 단편적인 모습이었다.

나를 무척 따르던 그 아이의 모습이 무척 궁금하기도 했지만 ‘여자아이들의 흔한 동경 심리겠지’라고만 생각하고 더 이상 물음표를 달지는 않았다.

그러던 5월의 어느 날 학교 수업시간에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부모사랑편지쓰기’ 시간이 어버이날 행사의 하나로 열렸다. 결과물을 정리하면서 우연히 그 학생이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에게 편지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학생의 가족관계를 살펴보았고, 부모님 두 분이 다 안 계신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그랬다. 그 아이는 엄마의 그늘이 그리웠던 것이고 나를 ‘엄마’처럼 따랐던 것.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혹시 수업시간이나 조·종례 시간에 아이가 상처라도 받을만한 조사나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지. 다행히 별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고, 그 때부터 그 학생을 챙겨줘야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느님이 아이들을 다 챙길 수 없어서 대신 어머니를 이 세상에 보내 아이들을 돌보게 했다’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학교에서 근무하다보면 다양한 사연의 아이들을 만나지만 신규 3년차에 마음 아픈 사연을 가진 그 학생을 보면서 다른 학생들과는 남다르게 느껴졌고 정말 엄마처럼 챙겨주고 싶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전부터 담임교사를 잘 따르던 학생이었지만, 나를 더 잘 따르는 학생이 참 고마웠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지막 졸업식 날이 되었다. 바로 그 날, 등이 굽은 할머니 한 분이 교무실로 찾아오셨다. 그 학생의 할머니라고 하시면서, 학생이 선생님 이야기를 많이 했고, 정말 감사했다며 수줍은 듯 작은 선물 하나를 내밀어 주셨다.

14년 전은 김영란법이 생겨나기 전이긴 했지만 나는 선물을 한사코 거절했다. 그런데도 그 할머니는 ‘정말 작은 마음을 담은 것’이라며 책상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가셨다. 졸업생의 학부모님이 내미는 마지막 선물이니 받아도 될 것 같았고, 어른의 선물을 거절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열어본 선물은 함박눈처럼 새하얀 행주 한 켤레였다. ‘무슨 행주지?’라며 열어보니 그 안에는 할머니께서 손수 수놓은, 동백꽃처럼 붉고 고운 자수가 들어있었다. 새하얀 바탕 한켠에 단정하고 붉은 꽃 자수를 놓은 행주는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비어있는 가슴에 따뜻한 마음을 채워주신 할머니의 행주.

5월 14일자 뉴스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스승의 날을 폐지해 달라’는 청원이 수 만 건 올라왔다고 전했다. 청원 글을 쓴 사람 대부분은 어쩌면 교사일지도 모른다. 5월 스승의 날은 교권 추락으로 아픈 교사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날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교단에 서는 교사도 ‘감정노동자’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할머니께서 한 땀 한 땀 수놓아 만든, 붉은 꽃무늬의 새하얀 행주에 얽힌 사연이 안개처럼 피어오르곤 한다.

이민선 대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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