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와 딱새
박새와 딱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5.07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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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산 서편 긴 자락 끝 토굴에서 생활한 지도 20년 남짓 됐다. 그 덕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변화의 다양함을 만끽하고 있다. 더구나 철따라 찾아오는 온갖 잡새의 울음소리를 듣는 자연친화적 행복한 삶도 덤으로 누리고 있다. 밤이면 소쩍새 울음으로 잠이 들고 아침이면 꾀꼬리 울음으로 하루를 여는 요즘 토굴 주변의 자연 풍경이다.

해마다 이때는 송홧가루와의 끈끈한 인연을 떨쳐버릴 수 없는 불편함도 있다. 견우와 직녀처럼 일 년을 애타게 기다린 보람으로 몇날 며칠을 소등에 진드기같이 꼭 달라붙어 지낸다. 하지만 한시 반시가 아까운 연인 사이일지라도 가끔은 미워질 때가 있듯이 송화 역시 늘 반길 수만은 없는 애증의 이중성은 어쩔 도리가 없나 보다. 빗자루 질에 등 떠밀린 야속한 심정인지 송화(松花)는 미풍에도 눈을 흘기며 연기처럼 흩어진다. 때론 촉촉하게 내린 새벽 비를 만난 송홧가루는 여명과 한데 어울려 온 마당에 신비한 황금빛 띠를 장식하기도 한다.

십 수 년 전 엉성하게 꾸며놓은 오죽(烏竹) 화단에는 해마다 가느다란 죽순 몇 가닥이 돋아나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유별나게도 굵은 죽순 수십 가닥이 힘차게 세상을 향해 해맑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오후 6시를 잔걸음으로 걷고 있는 실외 벽에 걸어둔 괘종시계를 슬쩍 바라본다. 시간적으로는 여섯시이지만 하지를 향한 계절의 여유로움은 자연친화적 삶을 더욱 만끽할 수 있는 여유도 같이 베풀어준다. 플라스틱 간이텃밭에서 잘 자라고 있는 상추를 가꾸고 넓어지는 무화과 잎새를 살핀 덕분일까, 식탁의 담소가 한층 푸짐하고 길게 이어진다. 가끔 상추밭을 찾는 박새, 딱새와 함께 누리는 동거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매일매일이 기쁘다.

박새가 대문 가까이 쌓아둔 블록 사이에 둥우리를 짓기 시작한 지가 제법 됐는지 그 깊이가 75㎝ 남짓하다. 4인치 블록의 좁은 출입구멍은 작은 몸집의 박새지만 여유로울 틈새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환경도 오직 하나 생존전략으로 선택한 것이다. 박새는 안전이 보장되는 인공새집도 거리낌 없이 이용하는 텃새로, 참새목 박새과로 분류된다. 주된 먹이는 작은 벌레이며 도심의 키 작은 나무 혹은 키 큰 나무에서 쉽게 발견된다. 간혹 손에 땅콩이나 해바라기씨앗 등 건과류를 쥐고 있으면 반복해서 날아와 먹이를 물고 가는 새가 박새이다. TV를 통해 소개되기도 한다.

박새는 진박새, 쇠박새, 박새, 곤줄박이 등 4종이 우리나라에서 관찰된다. 박새는 사람이 사는 인가(人家) 주변에 있는 나무를 자주 찾아오기에 쉽게 볼 수 있는 새이다. 잿빛, 검은 색, 흰색이 조화로운 깃털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잘 울면서 소리를 내고 다니기에 쉽게 관찰되는 새이다. 특히 사철나무를 즐겨 찾는다. 사철나무에는 먹이가 되는 그네 타는 애벌레가 많아 구석구석을 뒤져가며 잡아먹는 습성이 있다.

간혹 산사(山寺)에서 목탁 속, 불상 등 예기치 못한 곳에 둥우리를 지었다가 매스컴을 타기도 한다. 입구가 좁고 장애물이 있는 곳에 둥지를 지어 노출을 꺼리는 것은 뱀, 까치 등 천적의 침입이나 접근을 미리 막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풀과 이끼를 이용해 푹신한 밥그릇 모양의 둥지를 만든다. 둥지 속의 박새 다섯 형제는 노란 개나리꽃을 하나씩 물고 다소곳이 엎드려 어미새가 먹이를 물고 올 때만을 기다린다. 거울을 비추자 몸을 잔뜩 움츠리고 까만 눈동자마저 깜박거리지 않고 가만히 뜨고 있다.

딱새가 매일 여명 즈음에 전깃줄을 옮겨 다니며 목청껏 노래 부르기 시작한 것은 초봄부터였다. 일상에서 겪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하루는 지인과 마루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창고 쪽으로 무엇인가 휙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계속 지켜보니 딱새 수컷이다. 창고 속을 찾았다. 매년 반복되는 일로 천장이 낮은 선반 위 구석진 코너에 시선이 갔다. 아니나 다를까 둥우리 기초공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흙냄새를 맡아보지 못한 채 선반 위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수도승처럼 놓여있는 낡은 등산화 곁에서 딱새의 둥우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먼지 쌓인 등산화가 앞을 엄폐하고 있는 작년 바로 그 장소였다. 딱새는 사람의 생활터전 가까운 곳에 번식 둥우리를 짓는 습성이 있다. 사람의 왕래나 출입이 잦으면 길고양이, 쥐, 족제비 같은 천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세대를 이어 깨우치는 것이다. 작년의 번식률은 100%였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도 작년처럼 집을 리모델링하는 중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른 이끼, 마른 나뭇잎 등 검불을 물어 나르는 횟수와 양이 증가했다.

그 후 어미새가 외출한 틈을 타서 거울을 비춰 봤다. 뽀얀 알 6개를 확인하고는 한참을 잊고 있었는데 하루는 문득 생각이 났다. 다시 거울로 비춰 봤다. 알 여섯 개가 모두 다 부화에 성공했고, 크게만 보이던 둥우리가 꽉 차 있다. 그들은 어미 몰래 단호박 라떼를 먹고는 미처 부리를 훔치지 않았는지 모두 입가가 노랗게 물들어 있다. 어미새는 어둠이 내리면 새끼새를 포근하게 감싸고 함께 곤한 잠에 빠진다. 사랑과 행복의 새끼를 품고 있어서 그런가, 플래시를 비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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