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 균형-‘세 번째 살인’
선과 악, 균형-‘세 번째 살인’
  • 이상길 기자
  • 승인 2018.04.12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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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세 번째 살인' 한 장면.

<세 번째 살인>에서 미스미(야쿠쇼 코지)는 혼자 사는 집에서 6마리의 카나리아를 키웠다. 그런 어느 날 그는 새장 속의 카나리아를 죽여야겠다고 결심하고는 5마리는 죽여서 창가 아래 땅에 묻고, 1마리는 그냥 살려서 날려 보낸다. 뒤늦게 그걸 알게 된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가 그 이유를 묻자 미스미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도 그분(神)처럼 장난 한 번 쳐봤어요.” 미스미는 다니던 작은 식료품 공장 사장을 살해한 혐의로 지금 구속 수감 중이다.

사실 날 것 그대로의 삶과 죽음이란 건 가끔 신의 장난 같기도 하다. 이유가 없거든. 물론 병(病)이나 사고처럼 죽음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늘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 사람이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건 불분명하다. 감히 삶과 죽음인데 그냥 복불복(福不福)일 뿐이다. 죽을병을 피하려고 매사에 운동도 열심히 하고 6개월 마다 철저하게 건강검진을 받는 사람이 교통사고로 한 방에 가는 게 인생이다. 죽음은 순수함이나 선함도 가리지 않는다. 며칠 후면 세월호 4주기다. 자신이 키우던 카나리아들에게 삶과 죽음을 선사하며 잠시 신의 흉내를 냈던 미스미가 왠지 이해가 된다. 미스미는 착하게만 살았던 자신의 부모가 일찍 세상을 뜬 것에 대해 그분을 자주 원망해왔다.

그런데 재판을 앞둔 미스미가 계속 진술을 번복하면서 영화는 점차 미궁 속으로 빠진다. 첫 장면에서 분명 미스미가 사장을 죽인 뒤 불태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피해자의 딸인 사키에(히로세 스즈)와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관객들도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그 과정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선은 점차 사법부로 향한다.

사실 그렇다. 그분은 장난처럼 인간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데 그분의 자식들인 우리 인간은 선과 악을 기준으로 죽음을 결정하려 든다. 사형제도가 그렇잖나. 결국 감독은 미스미를 통해 그 둘 사이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있다. 허나 감독도 해답까지 제시하지는 않는다. 십자 교차로에 서서 고민에 빠진 시게모리의 마지막 모습으로 영화를 마무리 지으며 그 질문은 계속 진행 중이라고만 말할 뿐이다.

그런데도 해답을 찾고 싶다면 개인적으로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2009년작 <아바타>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외계종족인 ‘나비’족에게 있어 신(神)은 ‘에이와’라는 오래된 나무 한 그루였고, 판도라 행성의 자원을 노리고 침략을 감행하는 인간들에 맞서 제이크(샘 워싱턴)는 에이와 앞에서 적들을 물리칠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 그러자 네티티리(조 샐다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에이와님은 누구 편도 들지 않아. 그저 균형을 추구하실 뿐이야.”

선과 악은 언제나 극단으로 치우치고 만다. 또 쉽게 선(線)을 그어버린다. 하지만 만약 그분이 오로지 선(善)만을 추구할거라 생각한다면 그가 창조한 어둠은 사실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작 이 우주는 90% 이상이 어둠이다. 그 뿐이 아니다. 맹수가 잔인하게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것도, 맛있게 음식을 먹은 뒤 나오는 더러운 똥도 설명하기 어렵다. 악(惡)도 더럽긴 마찬가지. 그러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세 번째 살인>을 통해 던지는 수수께끼의 해답도 결국 ‘균형’에 있지 않을까. 빛만 존재하는 세상이 있을 수 없듯 모두가 선한 세상도 애시당초 실현 불가능한 일. 그나마 실현 가능한 ‘평등’이니 ‘복지’도 선보다는 균형을 맞추는 일에 더 가깝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벌이 가해지는 인간의 사법제도란 게 그렇듯이 어쩌면 우리들의 그분도 선(善)이 아니라 균형(均衡)을 추구하고 계신 건 아닐지. 물론 착각은 자유겠지만. 2017년 12월 14일 개봉. 러닝타임 125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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