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비행기를 향한 사모곡
어린 시절 비행기를 향한 사모곡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4.11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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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형님에게 화가 나서 형님이 만들어 온 고무동력기 뒷부분을 발로 찬 적이 있다. 고무동력기가 앞으로 가더니 이륙을 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신기해서 꼼짝하지 못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하늘을 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쇠로 만든 무거운 비행기가 어떻게 하늘을 날지?” 아버지에게 여쭤보았다. “비행기는 날개가 있어 날 수 있단다”는 답변을 들었다. 담임선생님도 똑같은 답만 했다. 어린 호기심에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었는데 그 이상을 알려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실제로 비행기를 한번 보고 싶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비행기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자란 부산 영도는 항공기 항로에서 벗어나 있어 비행기는 책에서나 볼 수 있었다. 너무나 비행기가 보고 싶었던 필자는 부산 수영공항에 가면 비행기를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아 왕복 버스비만 마련해서 수영공항에 간 적이 있다. 부푼 꿈을 안고 수영공항에 도착했다. 당시 공항 부근은 담이 높게 서 있었고 대문이 닫혀있어 공항 안도 비행기도 볼 수 없다는 것을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담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할 테니 그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배가 점점 고파왔다. 점심도 못 먹었는데 꾹 참고 기다렸다.

서산 너머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했다. 너무 억울했다. 비행기를 한번만 보면 좋을 텐데 주위가 어두워졌다. 결국 비행기를 보지 못하고 돌아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부모님한테서는 “하루 종일 어디를 돌아다녔냐?”고 “왜 이렇게 늦게 집에 왔냐?”고 야단을 맞았다. 그런데 비행기를 못 본 게 더 서러웠다. 과거 1970년대에 부산에서는 중학교 졸업여행을 서울로 갔다. 형님이 여의도 5·16 광장에 전시된 비행기들 앞에서 사진을 찍어 왔다. 나도 빨리 중학생이 되길 기다렸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었을 때 우리 중학교 수학여행 코스는 서울이 아닌 속리산으로 바뀌었고, 여의도의 5·16 광장도 사라졌다.

글을 어느 정도 읽을 줄 알게 되었을 때 백과사전을 통해 비행기의 양력, 추력, 항력, 플립, 엘리베이터, 러더, 에일러론 등 비행기에 관련된 단어들을 접하게 되었다.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양력과 항력, 추력 등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었고, 고교시절에는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물리였다. 대학에서도 물리학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아버지와 담임선생님은 “취직이 잘 된다”는 이유로 공대를 추천하셨고, 내 희망과는 달리 공돌이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비교적 편안하게 취직을 했였다. 1990년대는 손만 들면 취업이 잘 될 정도의 호황기였다.

1993년인가, 회사에서 일본 출장을 다녀오라고 했다. 부산에서 후쿠오카까지 25분 비행이었다. 비행기를 25분밖에 못 탄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일 년 뒤 유럽 출장을 갔다. 비행기 타는 것이 너무 좋아 15시간조차도 아주 짧게 느껴졌다. 그 시절은 김포에서 강릉으로 가서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루트여서 지금보다 비행기를 많이 탔다. 또 미국 출장길에 방문했던 워싱턴의 스미소니언박물관 중 항공우주박물관에는 양력, 추력 등 비행기가 나는 원리를 잘 설명하고 움직이는 모형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것을 딱 보는 순간 어린 시절의 궁금증을 충분히 풀어줄 만한 놀이기구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노화되어 작동이 잘 안 되는 것도 있었지만 “한국에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4년 전 제주에 항공우주박물관이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족과 함께 그곳을 방문했다. 그런데 내 눈을 의심할 만한 것이 목격되었다.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본 모형이 그대로, 더구나 작동이 잘 되는 모형들이 놓여 있었다. 너무나 감동이었다. 이제 우리 어린 아이들에게 비행 원리를 보다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도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임 호 ㈜피유란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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