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바람 잎샘추위
꽃샘바람 잎샘추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4.08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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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사이 벚꽃이 비가 되어 흩뿌려지나 싶더니 뒤따라 불어 닥친 봄바람이 시샘하는 여인의 목소리보다 더 앙칼진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어오는지는 아직도 잘 알지를 못한다. 어릴 적부터 기상학(氣象學?)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나 할까? 다만 낱말이 귀에 익은 몇 가지 바람[風]만큼은 어느 정도 알겠노라 어깨라도 으쓱해 보이고 싶다.

꽃과 시샘, 그리고 바람. 이 셋을 하나로 버물린 낱말이 있다. 이름 붙여 ‘꽃·시샘·바람’이다. 하지만 국어사전에는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시샘’에서 ‘시’자 한 자가 빠진 ‘꽃샘바람’에는 뜻풀이가 새겨져 있다. ‘이른 봄, 꽃이 필 무렵에 부는 쌀쌀한 바람’이라 했다. ‘-바람’ 대신 ‘-추위’를 갖다 붙이면 ‘꽃샘추위’가 된다. ‘꽃샘’의 의미를 좀 더 돋보이게 하는 낱말이지만 아름다운 순우리말이란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비슷한 뜻을 가진 순우리말에 ‘꽃샘잎샘’이 있다. ‘꽃과 잎이 필 무렵의 추위’라는 뜻이다. “꽃샘잎샘에 반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우리 속담도 눈에 들어온다. 흥미가 깊어져 국어사전을 자꾸 뒤적이다 보니 궁(弓)거랑(=무거천) 벚꽃 이파리처럼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들이 있다. ‘잎샘’과 ‘잎샘추위’라는 낱말도 그 중의 하나다. ‘봄에 잎이 나올 때의 추위’라는 뜻이다. 여기서 잠시 혼란에 빠진다. ‘꽃샘추위’와 ‘잎샘추위’, 그리고 ‘꽃샘바람’과 ‘잎샘바람’이 어떻게 다른지, 구분의 잣대가 헷갈리는 탓이다.

봄에 꽃이 피는 식물 중에는 의외로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것들이 많다. 산수유, 목련, 벚나무, 매화, 개나리, 진달래, 철쭉… 그밖에도 더 있다. 누군가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 이유를 애써 ‘꽃가루받이’와 연결 짓는다. 충매화(蟲媒花)는 곤충이 꽃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고, 풍매화(風媒花)는 바람에 의한 꽃가루의 이동에 잎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구분이 가능해질 법도 하다. 우리 조상들이 ‘꽃샘추위’와 ‘잎샘추위’의 개념을 따로 구분 지었는지 어땠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꽃샘추위’든 ‘잎샘추위’든 둘 다 봄에 찾아오는 게 사실이라면 ‘형-아우’ 구분쯤은 어림짐작으로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봄에는 꽃을 먼저 피우는 식물이 더 많다고 볼 때 ‘꽃샘추위’가 형이고 ‘잎샘추위’가 아우라고. ‘꽃샘바람’, ‘잎샘바람’의 순서라고 어찌 다를 수 있겠는가? 어쨌거나 봄은 아름다운 우리말의 보물창고인 것만은 틀림없다.

얼마 전에 불어온 봄바람 중에는 ‘뒤바람’ 즉 북풍(北風)도 있었다. <봄이 온다>는 꼬리표를 달고 북녘을 거쳐 남녘으로 내려온 이 풍선 같은 북풍은 다행스럽게도 겨울철에 볼 수 있는 한풍(寒風)이 아니라 초여름에나 볼 수 있는 훈풍(薰風)이었다.

하지만 봄에 부는 바람은, 그것이 시샘하는 여인을 쏙 빼닮은 것이라면, 반드시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법.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에워싸고 24시간 내내 한기(寒氣)를 뿜어내는 정쟁(政爭)의 바람은 꽃샘바람, 잎샘추위 따윈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차갑고 매섭고 모진 손톱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마구 할퀴고 있다.

어디 여의도뿐이겠는가. 울산시청 옥상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대화의 기운은 어느 바람결엔가 사라져 버리고 전운(戰雲)을 동반한 칼바람만 몰아치고 있는 것 같다. 국민들의 마음, 시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고 포근하게 감싸줄 봄기운 그득한 바람은 언제쯤 불어올 것인지?

누군가가 이렇게 외쳤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그리고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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