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유전·소작농 개념, 뛰어넘어야
경자유전·소작농 개념, 뛰어넘어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3.27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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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따라서 인공지능(AI)이 활용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지향적 산업은 농업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농업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해야 할 생명산업이라면 이제라도 ‘경자유전’이나 ‘소작농’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날 필요가 있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과 ‘소작농 제도’는 봉건시대의 한 맺힌 유물일 뿐이다.

우리가 역사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토지개혁’은 늘 이 땅의 권력자와 만백성의 최대 관심사이자 생명줄이었다. 그래서 경자유전과 같은 대원칙을 헌법에까지 명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바꾸어야 할 때가 왔다. 스스로 세운 원칙에 발목이 잡혀 빠른 속도로 발전해가는 세상과 발맞추지 못해 우리 농업이 도태되는 우를 더 이상 범해서는 안 된다.

이에 필자는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 개정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헌법 제121조는 “①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 제도는 금지된다. ②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로 되어 있다. 필자는 이 규정을 아래와 같이 바꿔 우리 농업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물꼬를 새롭게 터야 한다고 생각한다.

헌법 제121조의 규정을 이렇게 바꿀 것을 제안한다. “① 국가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 달성될 수 있도록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며,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②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해 농지의 임대차는 인정하되 임대료는 생산량의 10% 이내로 제한하도록 법률로써 정한다. 시설농업의 경우 20년 이상 장기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로써 정한다.”

이렇게 바꾸기를 제안하는 이유가 있다. 농업의 역사적인 정서와 이 시대가 직면한 산업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해 현재와 미래가 보장되는 산업적 기반을 굳건히 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첫째, 농업이 가진 다원적·공익적 기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농업과 농촌은 환경 보전, 농촌 경관 제공, 농촌 활력 제공, 전통문화 유지·계승 및 식량안보 등에 기여함에 따른 외부경제 효과로써 사회적 후생을 증진시킬 수 있다. 2017 강원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농경지의 공익적 가치는 281조 원으로 추산된다. 이를 다시 토양의 환경적 가치로 세분하면 △양분 공급 179조 8천억 원 △자연 순환 79조 1천억 원 △식량 생산 10조 5천억 원 △탄소 저장 6조 5천억 원 △수자원 함양 4조 5천억 원 등이다.

둘째, 실제로 농사를 짓는 임차농민에 대한 진입 기회를 확대·보호하고 새로운 ‘경자유전’의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현재 도시인의 농지소유 비율은 전국평균 약 48%에 달하고, 수도권을 비롯한 도시근교의 경우 80% 이상이 도시인 소유로 파악되고 있다. 문제는 정작 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민들은 도시인 소유 농지를 임차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전체 농지의 약 43%, 전체 농가의 약 60% 이상이 임차농인 만큼 지주의 횡포와 전횡을 막기 위해서라도 임대료를 헌법 121조 2항에 따라 생산량의 10%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을 법률로 정해야 한다. 이렇게 싼 임대료는 농지를 구입할 여력은 없지만 농업기술과 의지가 있는 젊은 세대에게 진입장벽을 낮춰주어 농업이 산업으로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헌법 제121조 ①에서 ‘경자유전’ 조항을 없애고, 세법상의 자경(自耕)기간과 세금 부과는 연관 짓지 말도록 고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그나마 좁은 나라에서 세금 때문에 겉치레로 농사를 짓는 일이 사라져 실제로 농사짓기를 원하는 사람이 농지를 활용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이 새로운 개념의 경지 활용이 될 것이다.

셋째, 농지의 20년 이하 장기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 농업은 미국처럼 광활한 땅을 활용하는 여건이 아닌 탓에 기술적 고품(高品)농업으로 가야 한다. 우선 텃밭농업과 전문농업을 구분 짓고, 전문농업의 경우 농지를 구입하지 않고도 20년 이상 장기임차가 가능해지면 농지구입비 부담도 덜고 시설 설치 등의 투자가 가능해질 것이다. 위탁경영은 규모와 기술을 감안한 지방정부의 종합계획에 따라 산업공단과 같은 전문농업단지를 조성한 다음 젊은 농부들에게 분양하는 방법이 있다. 그렇게 되면 대만이나 네덜란드처럼 소규모 농업에서도 첨단기술을 활용해 고품·지속농업을 정착시켜 시장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되고 다른 사람이 깨면 프라이가 된다’는 말이 있듯 차제에 우리 농업도 스스로 깨고 나올 수 있는 헌법적 기반을 만들 필요가 있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으로 스스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농업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기를 염원한다.

윤주용 울산시농업기술센터 소장,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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