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문제에 대한 세 가지 궁리
물 문제에 대한 세 가지 궁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3.1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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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에는 ‘무논(水畓)’과 그 반대개념의 ‘천수답(天水畓)’이란 게 있다. 문자 그대로 하늘에서 빗물을 내려주어야 겨우 벼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이다. 근래 보기 드문 겨울가뭄을 맞이한 우리 울산이 꼭 그 꼴이었다. 공업·농업용수는 물론이요 먹는 물 걱정으로 하늘만 쳐다보는 날이 부지기수였으니, 누가 감히 이를 부인할 것인가.

예나 지금이나 치산치수(治山治水)는 국가나 지자체 경영의 기본요소나 다름없다. 천지사방에 가뭄이 덮치면 나라님은 부덕(不德)의 소치라 하여 기우제(祈雨祭) 올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세종 5년(1423년) 7월 13일자 기우제 축문을 잠시 훔쳐보자. “삼라만상은 가뭄에 시달려 고사하기 직전이옵고, 억조창생들이 하늘 우러러 단비 갈구하기 어느덧 반년이옵니다. 임금 된 자가 덕이 없으면 삼재팔난(三災八難)으로 나라를 괴롭힌다 하였으니 혹 이 소자 도(?=세종의 이름)의 부덕으로 인한 벌책을 내리시옴인저… 일체 허물을 도(?) 한 몸에 내리시고 단비를 점지해 주옵소서.”

각설하고, 울산시가 지난 14일 ‘2018년 봄철 가뭄 대비 추진대책 점검회의’를 열고 거창해(?) 보이는 가뭄 프로젝트의 대강을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소식통은 “생활·공업·농업용수 등 급수 전반에 걸쳐 현 상황을 점검하고 장기적인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고 전했다. 눈에 띄는 것은 간이양수장 3곳. 이곳에 태화강 물을 끌어올리면 농업용수 하나만은 ‘걱정 끝’이라고 했다. 두고 볼 일이지만, 걱정거리를 하나라도 덜 수 있다면 그건 대단한 행운이다.

그러나 마실 물 즉 먹는 물은 어떤 방법으로 넉넉하게 확보하겠다는 것인지 감이 잘 안 잡혔다. 고심 끝에 내놓았다는 것이 ‘물 절약 캠페인’이다. 그 소리를 들은 한 호사가(好事家)가 한 마디 거들었다. “물 절약 캠페인 왜 안 하냐고 소리소리 지를 땐 잠잠하더니 지금 와서 무슨 자다가 봉창 긁는 소리냐”고 말이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싶다. 구·군청을 통한 홍보지 게시나 배부 정도라도 그렇다.

얼마 전 물 문제라면 자기한테 물어보라고 떵떵거리던(?) 지인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세 가지 아이디어를 들려주었다. 신공법을 이용해 너르디너른 학교운동장 지하에다 빗물 저장고를 만드는 것이 첫째 아이디어였고, 사시사철 물 마르는 일 없는 대운산 계곡을 댐으로 막아 식수원(食水源)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둘째 아이디어였다. 셋째 아이디어는 환경단체와 주민 다수의 반대로 가동을 멈춘 부산 기장의 해수담수화(海水淡水化) 시설을 울산에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보자는 것.

다소 황당해 보이기까지 한 아이디어들 아닌가. 하지만 성의 하나 괘씸한데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란 말도 있고 해서 두 번째 아이디어는 눈대중으로라도 훔쳐볼 요량이었다. 그래서 지난 주말 해질녘에 찾아간 곳이 대운산 계곡. 그러나 웬 걸, 세 갈래 길목에서 내원암 반대쪽 차도를 따라 올라가다가 ‘이건 아닌데’ 싶은 직감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울산시가 공을 들여 조성하고 있는 ‘울산수목원’ 예정지가 바로 이 일대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인은 눈 한 번 깜짝 않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두고 보시오. 길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니까. 수목원을 꾸민 다음 수원지까지 만들면 경관지수 높아지겠다, 먹는 물도 넉넉히 확보하겠다, 일석이조(一石二鳥) 효과란 것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소? 허허.”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야…. 천수답 울산이 목마를 때마다 비싼 시민세금 주고 낙동강 흙탕물 끌어다가 정수(淨水) 처리해서 마시지 않아도 될 날을 과연 기대해도 좋을까….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해는 어느 서슬에 산 뒤로 숨었는지 더 이상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김정주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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