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잘 보내셨나요?
설 연휴 잘 보내셨나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2.1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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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살이에서 쉼표는 반드시 필요하다. 해맞이 새해를 맞이한 지 46일 만에 달맞이 설날을 맞이했다. 연휴라는 핑계를 대며 일상을 몽땅 내려놓았다. 일탈을 만끽하면서 낮에는 선종(禪宗)의 말처럼 ‘배가 고프면 밥 먹고 잠이 오면 잤다.’ 그래도 두 가지 반드시 해야 될 것은 했다.

하나는 갈대를 병풍삼아 해오라기가 잠자는 백로주(白鷺洲)를 새벽마다 찾아 주변의 새를 관찰·조사하는 일이었다. 여유 있는 연휴를 생각했지만 조류 조사만큼은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마음이 허용되지 않았다. 또 다른 하나는 차일피일 미뤄두었던 터진 수도관을 깔끔하게 처치해서 생활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일이었다. 지난 1월 강추위로 얼어 터졌던 수도관의 얼음이 녹으면서 그 틈새로 수돗물이 뿜어져 나왔다. 문 없는 실외창고에 보온재도 없이 노출돼 있던 엑셀수도관이 얼어 터진 것이다. 임시방편으로 고무밴드로 묶어두었던 것을 커플링을 이용해 원래대로 고쳤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설날은 모든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 있는 날이었다. 마을 공동체, 이웃과 함께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보통 정월대보름까지 15일간을 즐겼다. 하지만 다변화된 현대사회에서는 많은 전승이 생략되고 새로운 변화가 생성·소멸되며 변천하고 있다. 그중 뚜렷한 것이 개인적으로 쉼표를 찍는 날이 된 설일 것이다.

예년보다 짧은 설날 연휴가 지났다. 설을 맞아 떨어져 생활하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가 잠자리를 떠나는 한아(寒鴉=겨울 갈까마귀)처럼 다시 직장을 따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못 다한 사연들로 온 밤을 지새우기도 했지만 인정과 세태는 하루가 다르고, 세대(世代) 또한 다름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움은 만남으로 풀었겠지만 그 대신 나온 배, 길어진 허리둘레, 늘어난 체중만큼 스트레스와 피곤함이 담뿍담뿍 쌓였을 것이다.

세배를 드리면 어른들은 다양한 덕담을 들려준다. 올 설날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덕담은 짧게 세뱃돈을 많이’라는 젊은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긴 덕담과 지적의 잔소리로 분위기가 서먹한 경우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덕담은 앞 세대의 시행착오가 담긴 많은 경험인 만큼 귀담아 들어둘 필요가 있다. 현실 혹은 미래에 예고 없이 닥쳐올 역경에 대한 선제적 대응책으로 유용하게 쓰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덕담 가운데 가장 많이 듣는 것 중의 하나가 나이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숫자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서양인과는 달리 나이에 무척 민감한 것 같다. 특히 여성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결례라 해서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반면 어른들은 묻지 않아도 스스로 “내 나이가 OO인데” 혹은 ‘낼 모레가 □□인데”와 같은 말로 나이 많음을 은근히 드러낸다. 나이가 들어도 몸이 불편하지 않으면 상관없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빠지고 이빨 사이가 멀어지는 발락치소(髮落齒疎)의 인생 육십을 경험해보면 ‘나이에 장사 없다’는 속담을 실감하게 된다.

평생 어업을 천직으로 살아온 구십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비록 쥐약을 먹고는 견딜 수 있어도 나이 먹고는 그리할 수 없다.” 이 함축성 있는 경험적 한 마디 말씀이 가슴에 찡하게 와 닿는다. 조그만 걸어도 숨이 차고, 작은 걸림에도 넘어지는 늙음의 불편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다시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속담같이 쉼에 대한 욕심이 봄의 새싹처럼 여기저기 불쑥불쑥 올라왔지만 설레설레 머리를 저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설 연휴 잘 보내셨나요?’라고 모두에게 묻고 싶다. 혹시 이번 설날에 형제와 자매 혹은 오빠와 동생 사이에 겉으로는 반갑게 대하면서도 안으로는 근친증오(近親憎惡)한 일은 없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육친 간에는 겨자씨 같은 시비(是非)가 벌떼 같은 봉기(蜂起)를 불러올 수 있다. 담배씨 같은 득실(得失)에 고슴도치의 바늘 같은 가시털(蝟毛·위모)을 곤두세울 수도 있다. 동서 사이에, 형제간에 그렇게 하여 술상이 엎어지고, 투견처럼 싸움박질 하며, 호랑이 포효 같은 험한 말이 오갈 수 있다. 그래서 얼굴 붉히고 헤어졌다면 지금 당장 만나든지 전화라도 해서 풀어야 한다.

장자는 말했다. “뱁새가 둥지를 만들어도 나뭇가지 하나요, 두더지가 강물을 마셔도 그 작은 배를 채우는 데 불과하다 했다.” 손위라서, 손아래라서 먼저 손 내밀지 못한다는 핑계는 치사하다. 오히려 손위, 손아래를 핑계 삼아 먼저 다가가야 한다. 먼저 건네는 말과 행동이 꽃이 되고 향기가 되기 때문이다. 설은 오해를 푸는 이해의 장이 되어야 하고, 싸움의 장이 아닌 화해의 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봄풀은 해마다 또다시 푸르건만, 떠나간 왕손은 다시 오지 않는다(春草年年綠 王孫歸不歸)’는 말은 창부타령에 나오는 말이다. 인생은 봄풀이 아니라 한번 가고나면 다시 오지 못하는 왕손인 것이다. 우울증 앓는 아내, 외로움 느끼는 남편에게 서로가 섭섭하게 했다면 등지지 말고 마주앉아 손을 잡고 눈을 맞춰야 한다. 당장 해야 한다. 내일이면 늦을 수 있다. ‘깊은 골짜기는 오히려 메우기 쉬워도 사람의 욕심은 채우기 쉽지 않다’고 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점차 줄어든다.

“설날 연휴 가족끼리 잘 보내셨죠?” 그럼, 돈 워리(Don’t worry)!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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