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글리 코리언, 그리고 평창
어글리 코리언, 그리고 평창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2.1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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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는 끝났지만 아직도 낯이 화끈거린다. 베트남에서도 최대의 명절인 설(=Tet, 뗏)을 앞두고 이 나라 남부 동나이 성(省)에 둥지를 튼 한국 투자기업 K사(섬유·의류업)가 저지른 낯부끄러운 사건 때문이다. 이 소식은 지난 11일 온라인매체 ‘베트남넷’ 등 현지 언론의 보도로 전해졌다. K사 대표를 비롯한 한국인 임직원들이 지난 8일 현지 종업원 1천900명의 월급을 떼먹고 야반도주했으며, 이 때문에 K사 하나만 믿고 뗏 연휴의 꿈에 부풀어 있던 베트남인들이 배신감과 억울함으로 울상을 짓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곳 지방정부가 파악한 체불임금은 1월분 월급 137억 동(6억6천만 원)이다. 아직 못 낸 사회보험료 175억 동(8억4천만 원)까지 합치면 현지에서 진 빚이 자그마치 15억 원에 이른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자 현지 지방정부가 비상조치에 나섰다. 월급의 절반을 지방정부 예산으로 우선 지급하고 경찰, 유관기관과 함께 사건 조사에 착수한 것. 점잖게 지켜보던 베트남 외교부도 끝내 입을 열었다. K사 대표가 돌아와서 밀린 임금을 지급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한국 총영사관에 요청한 것. 한 해외 투자기업 대표의 부도덕한 처신이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꼴이 되고 만 셈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유사 사례가 처음은 아니라는 데 있다. 지난 1월에도 그랬고, 비슷한 사례가 줄곧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다. ‘낯이 화끈거린다’는 것은 이런 달갑잖은 소식을 두고 한 표현이다. ‘어글리 코리언(Ugly Korean)’의 잇단 출현은 대한민국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얼마 전 베트남의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어 국가주석으로부터 3급 노동훈장을 받고 일약 ‘베트남 축구영웅’으로 떠오른 박항서 감독의 숨은 얘기를 생각한다면 억장 무너지는 소리로 들린다. 나라 체통을 여지없이 구긴 이런 파렴치 기업체들이 속출하기까지 우리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나,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 체통 구기는 일은 겨울철 올림픽이 한창인 강원도 평창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가장 낯부끄러운 일은 평창의 설원을 활강하듯 설치고 다니는 노로바이러스(Norovirus)의 위협이다. ‘강추위보다 더 떨게 한다’는 이 겨울철 바이러스는 감염원인 여하 간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존재다. 민간안전요원 수백 명이 무더기로 감염된 데 이어 스위스 선수 2명이 구토 증세를 호소했고, 우리의 스켈레톤(Skeleton) 영웅 윤성빈 선수마저 걸린 사실을 알고도 애써 참고 경기에 임했다는 소식은 바람이 눈밭 스치듯 그냥 지나쳐서 될 일이 아니다.

평창올림픽 집행위원회와 질병관리본부, 그리고 정부당국이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바로 노로바이러스의 존재는 국제적 수치, ‘나라 개망신’이 아니라고 누가 부인할 수 있을 것인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미리 이 사실을 모르고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을 점찍은 것을 행운으로 삼아야 하나? 아니면 프랑스 국영방송이 대회 운영을 극찬하면서도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책임 있는 당사자들은 평창올림픽이 끝나는 즉시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길 바란다. 그래야만 국민들의 직성이 조금이나마 풀릴 것 같아서다.

비록 대내적 망신에 그쳤고 본인들의 사과가 뒤따랐다고는 해도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막말 논란과 박영선 국회의원의 특권의식 논란 역시 가볍게 볼 문제는 아닐 것이다. 두 저명인사 모두 ‘어글리 코리언’의 면모를 손톱만큼이라도 드러냈다는 점에서는 궤를 같이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추한’ ‘불쾌한’ ‘천한’ ‘사악한’ ‘치욕스러운’ 등 온갖 기분 나쁜 뜻은 다 내포하고 있는 ‘어글리(Ugly)’란 형용사가 ‘코리언(Korean)’이란 성스러운 고유명사 앞에 더 이상 붙는 일이 없도록 나 자신부터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야 할 때인 것 같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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