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산책]졸업, 그리고 ‘나만 시작한다면’
[대학가산책]졸업, 그리고 ‘나만 시작한다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2.13 21: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년 2월이 되면 학교에서 기쁘게 치르는 일이 있다. 초등학교에서는 6학년을, 중고등학교에서는 3학년을, 대학교에서는 4학년 학생들을 졸업시키는 일이다. ‘졸업(卒業)’이란 낱말은 ‘학생이 규정에 따라 소정의 교과과정을 마친다’는 의미와 함께 어떤 일이나 기술, 학문 따위에 통달하여 익숙해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전자는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모든 학생들에게 해당되고, 후자는 대학 졸업생들에게 약간 해당되지 않을까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들은 후자보다 전자의 의미에 더 큰 비중을 두지만, 대학 졸업생을 뽑는 기업체와 기관들에서는 후자의 의미에 더 큰 비중을 두기 때문인지 대학교육의 성과와 질에 대한 ‘쓴 소리’들이 나오는 듯하다.

특히, 2018년 2월은 필자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우리 첨단소재공학부와 화학과가 산학융합지구 제2캠퍼스에서 신학기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교수 연구실과 실험실 이전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2008년 부임한 필자도 연구실 구석구석에 수북이 쌓아놓은 서류들을 먼지 냄새와 함께 기억의 저 너머로 보내거나 함께 가져가려고 정리를 하는 중이다. 그러던 중, 구석에서 원형 그대로인 채 옛 기억이 묻어있는 것들이 눈에 띄었다. 큰 녀석부터 셋째 녀석까지 가끔 내 연구실에 놀러와 끼적이던 그림 낙서들, 그리고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의 큰 녀석이 만들어준 생일카드가 그것이다.

A4 용지 크기의 빛바랜 녹색 종이에, 씨~익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큰 글씨가 적혀 있다. ‘생신 축하해요. 아빠 많이 힘드셨죠. 제가 아빠 속상하게 해서 죄송해요. 제가 아빠한테 안마도 해드리고 발도 밟아드릴게요.’ 지금 읽어보니 가슴이 찡하다. 그때는 키가 작고 몸무게도 덜 나갔던 아들들에게 나의 부은 발을 밟아달라고 이따금 졸랐던가 보다. 집에 가서 아이들을 많이 안아주고 칭찬해준 기억은 별로 없는데, 집밖의 일이 힘들다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기억만 남아있다 보니 괜스레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어느덧 키가 엄마보다 더 커버린 큰아들이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생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지난 가을 무렵부터 준비하던 특목고에는 입학하지 못해 섭섭했지만, 걸어서 통학할 수 있는 고등학교에 배정을 받아 한편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규정에 따라 중학교 교과과정을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아들에게, 고교 3년 과정을 마치고 새로 대학교에 진학하게 될 대한민국의 아들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면 좋을지 고민해본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90년대 초반에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하던 노래가 있었다.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 하는데~’라는 노랫말로 가객 김현식이 불러 가슴을 저미게 해주던 노래 ‘내 사랑 내 곁에’이다. 작곡가 오태호는 당대에 이 노래 말고도 수많은 애창곡을 만들었다. 가끔 노래방에 가면 제목을 기억해내는 게 고통이지만, 막상 노래가 시작되면 멜로디와 가사가 스스럼없이 나오는 그의 노래들이 적지 않다. 홍성민의 ‘기억날 그날이 와도’, 이범학의 ‘이별 아닌 이별’, 이상우의 ‘하룻밤의 꿈’,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 박정운의 ‘처음 만난 그때로’, 이승환의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이오공감(이승환+오태호)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사랑이 그리운 날들에’도 모두 그가 작사·작곡한 노래들이다. 이중에서도, 대중의 인기를 그만큼 끌지는 못했지만, 필자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았던 노래는 이오공감의 ‘나만 시작한다면’이다.

이 노래는 그 흔한 사랑 노래와는 결이 달랐다. 전 세계를 뒤흔든 성공과 처세술 서적들의 핵심, 부모님들의 기대와 바람의 속성을 짧은 노랫말에 간결하게 나타낸 불후의 명곡 ‘나만 시작한다면’을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 큰아들 녀석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내가 태어날 때 부모님은 날 보며 수많은 생각과 기댈 하셨겠지… 나만 시작한다면 달라질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 내일, 커다란 인생의 무대 위에서 지금부터 시작이야…” 큰아들아! ‘인무원려(人無遠慮) 필유근우(必有近憂)’라는 공자님 말씀이 있어. ‘사람이 원대한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눈앞의 근심에 휩싸이게 된다’는 뜻이지. 이 말씀을 명심하고, 지금부터 시작하기 바란다. 네 진정 원하는 그 일을!

공영민 울산대 공대 기획부학장, 첨단소재공학부 교수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