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학칼럼]‘차레’와 ‘차례(茶禮)’
[박정학칼럼]‘차레’와 ‘차례(茶禮)’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2.1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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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기독교 가정처럼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이 많아졌지만 며칠 후 설날이 되면 집집마다 ‘차례(茶禮)’를 지낸다. 돌아가신 날 지내는 기제(忌祭)보다 절차와 음식을 줄여서 지내는 간소한 제사(祭祀)라는 의미다.

우리 고대 국가에서는 영고, 무천, 동맹 등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을 나라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행사로 쳤다. 이암이 「태백진훈」에서 ‘제사는 하나가 되는 것을 위한 행사(祭祀爲一)’라고 정의했듯이 천제(天祭)는 나라 안의 부족이나 씨족들 간의 단합이 목적이었다. 천제를 지낸 후 마을단위로 동제(洞祭)를, 가정별로 제사를 지낸다. 이처럼 제사는 ‘함께 음식을 먹으며 친목을 도모하는’ 단합대회였다.

그런데, 한자말로 ‘제사’나 ‘차례’라고 하면 어쩐지 형식적 예의(禮儀)를 중시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차레’라는 우리 옛말을 음미하고 나면 느낌이 달라질 것이다.

‘차’는 ‘사람이 꽉 찼다’ ‘물을 채운다’는 말에서 보듯이 ‘채운다’는 뜻의 옛말이고, ‘레’는 ‘쓰레기’ ‘수레’ 등에서처럼 ‘비운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그러니 ‘차례’의 본딧말인 ‘차레’는 ‘비우고 채운다’, 즉 그간의 생활을 돌아보면서 잘못된 것은 반성하여 버리고, 새롭게 잘하자는 계획을 세우는 ‘단합 강화’의 의미를 가진 말이 된다. 형식보다 비우고 채우는 대화가 있는 식사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제사가 단합행사이고 반성과 계획이 내용이라면, 그 절차와 형식은 제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취향에 따라 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여러 옛 책이나 근래 제례법 책에서 ‘제사는 정성이지 절차나 음식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는 말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간소화하여 지내고 있다.

음식은 참석자들이 함께 먹을 것이므로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나 갈비찜 같은 것을 포함하여 적절한 양을 준비한다. 다만 한 집에서 다 준비하면 주부의 부담이 커지므로 음식은 막내 동생과 나누어 준비하고 비용은 전체 형제들이 나누어 부담한다. 단합행사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이다.

제사 절차도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집에 오신다는 생각으로 지킨다. 현관문을 열어 모시고 들어와 환영인사를 하고, 식사 전에 반주를 올리며, 식사 후에는 아쉬우니 한 잔 더 하시라고 권한 다음 작별인사를 하고 문밖까지 배웅하는 것이다. 제상도 먹는 순서를 생각하여 차린다. 조상들이 앉은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밥과 국을, 다음 줄에는 반주를 마시며 먹는 안주류를, 그 다음 줄에는 식사하며 먹는 반찬류를, 가장 먼 곳에는 식사 후에 먹는 과일을 놓는다. 이런 내용을 일일이 설명하면서 진행하다보니 아이들도 제사 순서나 상 차리는 법에는 훤하다.

아이들이 잘 읽지 못하는 ‘한자 지방’ 대신 사진을 놓아 조상을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축문도 한문으로 하지 않고, 부모님께 그간 자식들 집안에 있었던 일들과 앞으로 할 일 등 비움과 채움의 내용으로 작성하여 낭독한다. 참석자 개인별로 하려 했으나 아직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은 미국에서 큰아들이 나와 참석했고, 미국 손자들이 새로 사업을 시작했으며, 막내 증손녀는 며칠 전에 돌잔치를 했는데 벌써 잘 걸어 다니고, 막내 손자는 이제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대에 취직했다. 가을에는 형제들이 고향마을에 가서 고향사람들과 작은 잔치를 할 예정이다’는 등의 내용을 담는 것이다. 아이들도 자신들의 얘기가 나오므로 관심을 갖게 되고, 다음에 또 자기의 좋은 얘기가 들어가도록 노력하게 된다.

앞으로 정부에서 이런 점을 참고하여 의례준칙을 고칠 때 ‘차례(茶禮)’가 아닌 ‘차레’에 맞추어 용어와 절차를 새롭게 재정립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젊은이나 기독교인들의 거부감도 줄일 수 있고, 우리 겨레 고유의 문화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박정학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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