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학 칼럼] 사랑, 어울림 에너지
[박정학 칼럼] 사랑, 어울림 에너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1.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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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놓아라’고 가르쳤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석가모니는 자비(慈悲)를 강조했고, 불교경전인 ‘잡아함경’에는 “중생은 언제나 상대와 함께하고 대상과 하나로 어울리느니라”라는 말이 있다. 공자는 인(仁)을 강조했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우주의 본성이 ‘하나 됨’이며, 자비와 인을 포함한 ‘사랑’을 하나로 어울리게 하기 위한 제1 덕목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십자군 전쟁에서처럼 종파적 갈등이 기독교계에서 비교적 많았던 것 같다. 현재 중동지역에서 출발하여 세계적으로 테러를 일으키는 IS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가 ‘하나 됨’이 아니라 경쟁과 투쟁을 부추기고 있는 현장을 자주 보게 된다.

그렇게 되는 이유에 대해 고 이홍범 박사는 『홍익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인간의 불행이 우주의 본성을 하나로 보지 못하는 무지에 있다’면서 ‘이미 양자역학이라는 현대과학에서 원자에서 우주까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이 증명되었는데,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투쟁과 경쟁이론’이라고 설명한다.

성인들은 우주의 본성이 ‘하나’이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 ‘사랑’이라고 가르쳤다. 그런데도 매일 그것을 입에 담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그 진정한 의미를 실천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교단과 신자들이 있다. 이들 때문에 무한경쟁의 원리가 나왔고, 그 결과 1% 대 99%라는 극단적 양극화 현상이 빚어졌다는 말이 있다.

역사를 단재 신채호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이라고 했는데, 이는 나와 너를 경쟁이나 투쟁의 관계로 본 잘못된 종교행태와 연결이 된다. 반면, 이홍범은 ‘역사는 자아투쟁’이라고 하여 ‘너와 나는 하나인데, 그것을 자기 안에서 극복해야 하는 관계’로 보고 우리 겨레의 홍익인간 사상이 그런 가르침이라고 했다. 그의 말은 예수, 석가, 공자님의 가르침인 ‘사랑으로 극복하라’는 말과 연결이 된다.

우주의 본성이 ‘하나’라는 것은, ‘우리’는 너와 내가 경쟁과 투쟁을 하는 남남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 되어 서로 돕고 위하며 살아가야 하는 관계라는 의미이다. 또 그러려면 당장 눈앞에 보이는 내 이익을 양보해야 하는 ‘자신과의 싸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매우 바른 역사인식이다. 그런데 서구 물질문명에서는 ‘자아투쟁’이라는 자기극복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무한경쟁’이라는 오도된 원리가 나왔고, 여기서 ‘인간의 불행’이 싹튼다’면서 극단적 양극화 현상을 지적했다.

반면, 우리 조상들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전정한 승리’라는 말을 비롯하여 자기극복을 하는 수많은 문화와 가르침을 남겼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참을 인(忍) 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등 참을 인(忍)을 중시하는 속담과 격언들이 많은 것도 자기극복 과정을 강조한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그런 우주의 본성을 다 알고 후손들에게 가르침을 준 것이다.

그리고 간혹 보게 되는 중국 무협 내지 역사 드라마나 우리 드라마에는 사람들이 같이 술을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중국에서는 ‘원수를 갚겠다’는 다짐을 하며 마시는 술이 많고, 우리는 쌓인 감정을 풀기 위해 마시는 술이 많다. 경쟁을 통해 내가 이기더라도 곧바로 경쟁자들에 의한 도전과 항전을 받게 되지만, 우리가 함께 잘 되고 나면 그럴 염려가 없으니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이 훨씬 더 큰 이익이 된다는 지혜를 깨닫고 ‘자아투쟁’을 통해 그것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식들이 이런 지혜를 깨칠 수 있도록 그런 행동의 실천을 솔선수범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우리 역사와 문화에서 이런 지혜를 깨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실천을 독려하는 교육 혁신을 해야 한다.

박정학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전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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