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차 울산축구회의 신년회
44년차 울산축구회의 신년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1.0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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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8시, 태화강변 B구장(일명 ‘2구장’) 모퉁이에 차려진 상에 삶은 돼지머리가 올라갔다. 최고령자인 김동룡 1∼3대 회장(82, 중구 학성동 ‘울산약국’ 대표, 전 울산시약사회장)이 고천문(告天文)을 낭독했다. “유세차… 하늘에 계시는 천신(天神)이시여, 태화강에 계시는 용신(龍神)이시여! 이곳 태화강변에서 운동하는 울산축구회 회원들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여 주십시오!” 44년 전통을 간직한 울산축구회의 2018년 신년회는 이렇게 거행됐다.

김 회장은 스스로를 ‘창시자’라 부를 만큼 모임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울산축구회’라면 김 회장이 둥지를 부산에서 울산으로 옮긴 1974년 7월 4일 ‘울산조기축구회’란 이름으로 깃발을 내건 ‘울산 최초’의 축구동호인클럽이다. 그는 부산서 제일 잘나가던 ‘동백축구회’ 부회장도 지내서인지 축구에 대한 자부심 하나만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마니아다.

회원 중엔 저명인사, 이색인사도 적지 않다. 김 회장과 고락을 같이한 배영철 초대총무(75), 정갑윤 국회의원(28대 회장)과 최상관 변호사, 정부남 전 남부·중부서 수사과장(76), 이성헌(동천개발 사장)·이백호(울산시청 근무)·이창수(30대 회장) 회원도 그들 중 한 명이다. 초대총무를 지낸 배 씨는 장남 현일(49), 차남 현민(46)씨를 회원명단에 똑같이 올려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축구광이다. 30대 회장을 지낸 이 씨는 울산제일중 학생 시절이 생각나 가입을 결심했다. 당시 울산축구회의 전용(?)구장은 제일중 운동장. “제일중 축구부원으로 시합도 했는데 울산축구회는 못 이기겠습디다.” 그의 귀띔이었다.

구장(球場) 구하기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조기축구회’ 간판 초기엔 울산초등 운동장이 좁다고 훨씬 너른 제일중 운동장을 택했다. 하지만 계비고개 근처에 있던 학교가 태화동으로 이전하면서 선경직물(현 선경아파트) 자리로 옮겨야 했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또다시 지금의 태화강변(옛 불고기단지) B구장으로 이삿짐을 날라야 했다.

하마터면 구장에서 쫓겨날 뻔한 일도 있었다. 약 14년 전, 구청에서 강변축구장을 인조잔디로 단장하면서 생긴 위기였다. 그러나 끈질긴 뚝심이 자리를 지키게 해주었다. ‘독점권’ 대신 ‘우선권’을 갖는 선에서 타협을 보았던 것. 아침나절 2시간은 울산축구회가 먼저 이용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지금의 B구장은 울산축구회 회원들의 애환이 한가득 서려있는 곳이다. 김동룡 초대 회장이 당시를 회고했다. “물이 잘 빠지게 흙바닥에 자갈을 깔고 그 위를 마사토로 덮어 구장을 다지는 공사였는데, 당시 돈으로 7천만원은 좋이 들어갔을 겁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시에 기부채납한 구장이 졸지에 빼앗길 위기에 놓이자 회원들은 법적 송사도 불사할 기세였다고 회원들은 입을 모은다.

30명 회원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72명. 그러나 36대 고기봉 신임회장을 배출하기까지 거쳐 간 회원도 감안하면 그 수는 거의 2천명을 헤아린다. 저변인구도 44년 전과는 판이하다. 울산생활체육축구연합회 회장과 울산시체육회 상임부회장을 역임한 김헌득 산업인력공단 상임감사(전 울산시의회 의원)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 등록된 울산지역 축구회 수는 220개 남짓이고, 미등록까지 합치면 270개가 조금 넘을 겁니다.” 그는 또 지역의 축구 저변인구를 4∼5만명으로 추산한다. 한 축구클럽의 평균 회원 수를 50명으로 잡고 회원 가족까지 저변인구로 쳐서 합산한 수치라 했다.

늘 그랬지만 회원들은 매사를 스스로 알아서 처리한다. 일요일과 공휴일, ‘달력 빨간 날’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축구화의 끈을 조여 매고 ‘2구장’에 모여 땀을 쏟아낸다. 건강과 친선, 일석이조 그 이상의 혜택을 누리는 것. 무술년 새해에도 어깨는 무겁다. 울산축구회 44년 자료를 기록으로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36대 새 집행부는 울산축구회 44년사가 울산축구의 산 역사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바쁘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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