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사에서의 새해 해맞이
충의사에서의 새해 해맞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8.01.0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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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해맞이를 어디서 하는 게 더 의미가 있을까? 정유년 섣달그믐날, 탕 속에서 이 문제로 잠시 시간을 축냈다. 궁리 끝에 가닥을 잡았다. 그래, 충의사로 가자! “충의사 모르는 사람이 어찌 울산사람인가?” 언젠가 먼발치에서 훔쳐들었던 지역원로 한 분의 말씀이 마음을 움직였다.

‘충의사(忠義祠, 중구 학성동)’라면 임진·정유왜란 때 왜군과 싸운 울산 의사(義士)들의 충의(忠義)정신을 기려 위패를 모시고 봄·가을에 제향(祭享)을 올리는 사당으로 2000년 7월 준공을 보았다. 처음 ‘239휘’이던 위패는 17년이 지난 지금, ‘242휘’로 늘어났고, 이름 없이 전사한 분들의 위패인 ‘무명제공신위(無名諸公神位)’도 함께 봉안돼 있다. 안내판은, 충의사가 자리잡은 학성산(일명 신두산) 구릉은 정유재란 당시 조명(朝明)연합군 수장들이 머물던 곳으로, 치열한 격전장이었던 울산왜성(일명 학성공원, 해발 50m)을 굽어보는 위치에 있다.

무술년 정월초하루,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간절곶 해돋이 시각(오전7시31분)에 맞춰 충의사를 찾았다. 전망 좋은 상충문(尙忠門) 앞에는 이미 60∼80대 어르신 세 분이 먼저 와 계셨다. 반구동에 사신다는 김 선생(61)과 박 여사(64)가 거의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저기 보세요. 지금 막 올라오네요,!” “정말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해요.” 충의사 해맞이가 두 번째라는 박 여사는 눈부시게 솟아오르는 무술년 첫 해를 향해 집안의 무사안녕을 두 손 모아 빌었다. 그러나 더 이상의 해맞이 객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창의문(彰義門)으로 향했다. 제법 거리감이 있을 줄 알았던 학성공원이 손에 잡힐 듯 지근거리에 있었다. ‘조명연합군의 화공(火攻)작전’이 여기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정유재란 때의 도산성 전투(島山城 전투, 1차 1597.12.23∼1 598.1.4/ 2차 1598.9.22∼25) 장면과 함께 말의 피와 자신의 소변까지 받아 마셨을 앞대머리 왜장(倭將) ‘가토 기요마사’의 초췌해진 얼굴이 겹쳐지며 떠올랐다. 1차 철군 사흘을 앞둔 1598년 1월 1일 새해 해돋이 무렵의 도산성도 넌지시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필름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이날의 기록은 아직 찾아볼 수 없는 탓이기도 했다.

이번엔 발길을 ‘전시관’으로 돌렸다. 임진·정유왜란의 전투연보와 울산 의병의 주요 전투연보가 걸려있고, 울산 의사들의 실기·교지가 비치돼 있으며, 일본인이 그린 도산성 전투도 사본, 그리고 당시의 갑옷과 병기들이 소량이나마 전시돼 있는 공간이다. ‘도산성’에 대한 기록이 시야에 들어왔다. ‘신라의 계변성이라 불리던 성’이란 표현이 새삼 눈길을 끌었다. 충의사 준공 당시 그대로의 표현이란 말인가. ‘계변성’이 요즘은 ‘도산성’이 아닌 ‘학성산’ 또는 ‘서원산’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표기상 오류쯤이야 별 문제 안 된다는 것인가?

상충문 근처 방명록을 잠시 눈여겨보았다. 2017년 11월 8일∼12월 30일 사이에 서명한 숫자가 고작 31명이다. 서명 안 한 이. 단체 참배객까지 감안한다면 더 늘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인가. 그래서일까? 매일 3교대로 근무한다는 경비인력의 불친절에 이해가 갈 만도 했다. 한데 자세히 보니 정월초하루인데도 향로와 향통에 향(香)이라곤 한 개도 안 보인다. 이틀 전(12월 30일) 오후 2시쯤 방문했을 때도 향통은 비어있는 지 꽤 오래인 것 같았다.

충의사 해맞이를 마치고 오는 길에 왜장 동상 건립 문제로 잠시 시끄러웠던 학성공원 서쪽 입구를 흘끗 쳐다보았다. ‘왜군 진영’에 대한 부조 건립은 이미 끝났고 ‘조명연합군 진영’에 대한 부조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왜군 진영’ 부조(북쪽)와 ‘조명연합군 진영’ 부조(남쪽)의 위치가 뒤바뀐 것이 신기했다. 밑자리 면적 때문인가, 아니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일까? 충의사 해맞이는 그래서 더더욱 무의미하지 않았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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