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소네트, 그 겨울의 즐거움
겨울 소네트, 그 겨울의 즐거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2.2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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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정유년 한 해도 이제 역사 속으로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추고 있다. 지난 2월, ‘명절 후유증과 변화의 물결’이라는 신년 첫 칼럼을 게재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의 빠름 앞에는 누구도 당할 자가 없는 모양이다. 책상 한 쪽에 세워진, 달랑 한 장 남겨진 작은 달력이 더욱 쓸쓸해 보인다. 고딕체의 깔끔한 숫자 아래엔, 드문드문 기억해야 할 절기나 기념일이 인쇄되어 있고 그 여백 사이로 필자의 건망증을 커버해 줄 메모들이 비집고 들어차 있다.

특히 올해는 필자가 회갑을 맞은 해로 여느 때보다 더 의미가 부여된 날들이 아니었나 싶다. 요즘에야 회갑이라고 해서 ‘잔치’를 벌이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다. 그러나 예전에는 60세 이상을 넘겼다는 자체가 장수(長壽)를 뜻했으므로, 자손들은 이를 영광스럽게 여겨 친척과 친구들을 초대해 생일을 기념했다. 잔칫날에는 ‘백수백복도(百壽百福圖)’ 등의 병풍을 치고 회갑상을 차려 집안 어른의 장수를 축하하고, 술을 올리고 절하며 만수무강(萬壽無疆)을 기원했다. 이제는 이른바 100세 시대가 열리며, 그 풍속도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저물어 가는 정유년의 세밑에서 12월의 탄생석을 검색해 본다. ‘터키석’이라고 나온다. 하늘색 또는 청록색을 띤 아름다운 보석으로 의미는 성공, 승리라고 한다. 푸름이 희망의 상징이라면, 한 해 동안 꾸준히 노력하고 땀 흘리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탄생석은 폴란드와 중부 유럽에 이주해 온 유대인들에 의해 비롯된 풍습인데, 12가지 보석을 1년의 열두 달과 견주어 자신이 태어난 달에 해당하는 보석으로 장식용품을 만들었다. 이러한 12개의 보석을 탄생석이라 일컬었는데, 이 보석을 가지면 행운과 장수, 명예를 얻는다고 믿어 왔다.

탄생석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 해 동안 필자와 동고동락한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뮤직앱에는 지난달부터 이미 12월의 맛을 한껏 북돋워 줄 ‘겨울의 곡’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뉴에이지 음악가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연주곡 ‘December’, 슈베르트의 대표적 연가곡 ‘겨울 나그네’, 그리고 바로크 음악의 최대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四季)’ 중 ‘겨울’ 등이 계절을 빗댄 단골 메뉴로 올라 있다. 그중에서도 비발디의 ‘사계’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부문에서 당당하게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음은 물론, 불안감과 초조감을 해소시키는 심리치료에도 널리 활용되는 작품이라 필자는 더 애착이 간다.

비발디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이 곡은 1725년 완성되었다. ‘화성과 창의에의 시도’라는 부제를 단 독주 바이올린과 현악 합주를 위한 12곡의 협주곡 중 4곡에 ‘봄·여름·가을·겨울’이란 간단한 표제를 붙여 ‘사계’라 부르게 되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비발디의 ‘사계’가 첫선을 보였을 때 이들 4개 바이올린 협주곡에는 이탈리아어로 된 소네트(Sonnet : 14행 시)가 서문처럼 붙어 있었다고 한다. 비발디의 대표적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는 네 편의 시에 의해 사계절 분위기와 색채를 즐겁고도 섬세하게 표현해 낸 표제음악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저물어 가는 정유년을 차분히 마무리하며, 비발디 자신이 쓰고 이 작품의 표제 구실을 하고 있는 4개의 소네트 가운데 ‘겨울’을 음미해 본다.

‘모든 것을 얼어붙고 떨게 하는 눈의 계절/ 매섭도록 시린 바람이 불어온다/ 지나는 사람들의 걸음마다 눈 위로 찍히는 발자국들/ 사람들은 덜덜 이를 부딪친다/ 따뜻한 불을 쬐며 고요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 바깥은 겨울비에 흠뻑 젖는다/ 얼음 위를 조심조심/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급히 가려 했다가 미끄러지고, 빠지고/ 일어나 다시 가려 뛰다가/ 얼음이 그만 쩍 벌어지고 만다/ 누군가 집 떠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프리카의 열풍과 차가운 북풍, 온갖 바람이 휘몰아치는/ 아, 이것이 겨울, 그러나 이것조차도 겨울의 즐거움이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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