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까마귀의 팔자
떼까마귀의 팔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2.17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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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새 떼까마귀에 대한 예우가 ‘하늘과 땅 차이’다. 울산에선 ‘고급 감귤’ 대접이지만 수원에선 ‘탱자’ 취급도 못 받는 게 현실이다. 같은 하늘지붕 아래에서 이처럼 예우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쳇말로 ‘팔자소관’인 것일까?

수원은 올 겨울도 공포 분위기의 연속이다. ‘떼까마귀의 공습’ 탓이다. 수도권 언론매체들의 호들갑은 하늘이라도 찌를 기세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떼까마귀 수천 마리 올해도 수원 도심 출몰… ‘배설물 주의보’>, <‘떼까마귀’ 3000마리 또 수원에… 도심 출몰 지역은?>, < “설마 했는데 또”… 수원 도심 뒤덮은 까마귀 떼 ‘비상’>, <올해도 어김없이 ‘수원’ 강타한 떼까마귀… 전깃줄에 밀집>, <수원시 ‘떼까마귀와의 전쟁’ 골머리>…. 언론에 비친 떼까마귀는 예외 없이 천덕꾸러기, 골칫거리, 애물단지다. 떼까마귀보다 민원이 더 신경 쓰이는 수원시는 홈페이지에다 ‘주의’ 홍보물까지 올려놓았다.

근착 뉴스엔 ‘테러’, ‘악몽’이란 말도 등장한다. 한 매체는 “(지난 겨울) 정전에 배설물 테러까지 겪으며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걸어 다녔던 수원 시민들의 악몽이 또다시 시작됐다.”고 엄살을 부렸다. 수원시에 따르면 올 겨울 ‘떼까마귀 3천여 마리’가 도심에까지 출몰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1일부터이고, 지금은 도시 전역에서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다.

수원 떼까마귀의 하루 일과는 울산 원정팀과 조금 다른 데가 있다. 낮엔 주로 화성과 변두리 농경지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해 저물 무렵부터 다음날 아침까진 도심 건물과 전선에 앉아서 휴식을 취한다. 앉아서 쉬는 곳이 ‘건물’과 ‘전깃줄’인 걸 보면 태화강 대숲이나 나무숲 같은 자연휴식지가 수원엔 따로 없는 것 같다. 떼까마귀들에게 울산은 그래서 천국이다.

수원시의 고뇌를 경기신문 12일자 기사에서 읽을 수 있다. 수원시는 지난 겨울의 빅데이터를 근거로 ‘도심 출몰 지역’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그러나 예측은 빗나갔다. 올 겨울엔 도심뿐만 아니라 변두리에도 자주 나타나는 탓이다. 급기야 수원시는 언론용으로 ‘임시해법’, ‘궁극해법’ 두 가지를 동시에 공개했다. 임시해법으로 ‘초음파를 이용한 떼까마귀 퇴치’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돌아온 건 ‘임시방편’이란 따가운 지적이었다. 궁극해법으론 ‘공중선 지중화’를 내놓았다. 떼까마귀들이 앉아서 쉬지 못하도록 전깃줄 자체를 없애겠다는 이 기발한(?) 아이디어 역시 퇴짜를 맞았다. ‘천문학적 예산으로 실현 불가능’이란 판정을 받은 것. 오죽했으면 ‘초음파 퇴치’, ‘전선 지중화’ 구상이 다 나왔을까.

수원시민의 민원은 “울음소리가 무섭다”, “배설물로 차가 더러워진다”- 이 두 가지가 대부분이다. 그러자 수원시는 시청 홈페이지에 ‘떼까마귀 출현 주의보’를 급히 올렸다. “떼까마귀 출현 지역의 전깃줄 아래에 차를 세우거나 지나갈 땐 각별히 조심할 것, 외출 후엔 손 씻기 등 개인위생 관리를 철저히 할 것”이란 당부도 곁들였다.

민원 중엔 떼까마귀가 조류인플루엔자(AI) 매개체가 아니냐는 민원도 올라왔다. 수원시는 ‘불안 해소 차원’이라며 떼까마귀 분변 검사를 18일쯤 의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또한 호들갑에 그칠 공산이 크다. 지난 1월 국립환경과학원이 수원 떼까마귀 분변 82점을 검사한 결과 AI 바이러스가 전혀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원시는 “떼까마귀는 오리류·고니류와 거의 접촉하지 않아 AI 감염 가능성이 낮고, 떼까마귀에서 AI가 발생한 적은 없다”는 해명자료를 별도로 내놓았다.

비슷한 시점, 울산에선 180도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ABF(아시아버드페어) 집행위원회는 “11월 하순에 열린 태화강 ABF 행사가 성공적”이었다며 울산시장 앞으로 감사 서한을 보냈다. 태화강생태관광협의회는 ‘2018 태화강 겨울철새학교’를 23일부터 한 달 동안 연다고 알렸다. 떼까마귀의 팔자는 아무래도 둥지를 어디에 트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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