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동물과 육식동물-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의 한 장면.
초식동물과 육식동물-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의 한 장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11.1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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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중 한 장면.

초식동물에게 육식동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다. 살아서 움직이는 다른 생명체를 죽여 그 살을 뜯어먹어야만 살 수 있는 육식동물은 그 잔인함으로 인해 풀만 뜯어먹어도 살 수 있는 초식동물의 기를 금세 죽여 버린다.

초식동물 입장에서는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상황이기만 해도 다행이다. 도망 다니기 바쁜 초식동물에겐 육식동물이 없는 곳에서 사는 게 늘 최선이다. 그렇게 매일 당하고만 사니 초식동물 입장에서는 육식동물들에게 “너희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잔인하냐”고 따질 법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말을 들을 수도 없지만 늘 도망 다니기만 하는 걸 보면 짜더러 그러지도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지능이 높아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만큼 인간은 따진다.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 선(善)과 악(惡), 혹은 정의(正義)를 논한 뒤 잔인한 그들을 ‘악한 존재’로 규정짓고 벌을 내리려 한다. 맞잖아. 하지만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다고 그걸 악하다고 할 순 없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에서 주인공 케이트(에밀리 블런트)는 인간세상에서 말하자면 초식동물 같은 존재다. 직업은 경찰이지만 나름 온실 같은 미국 애리조나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아동 납치 살해 사건을 수사하다 그 사건이 규모조차 짐작할 수 없는 최악의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의한 계획범죄임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사고로 동료경찰까지 사망하게 되는 일을 겪으면서 분노한다. 미국 정부는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특수 수사팀을 꾸리게 되고, CIA요원 맷(조슈 브롤린)을 책임자로 부른 뒤 케이트까지 합류시켜 멕시코의 한 도시인 후아레즈로 급파한다.

‘후아레즈’가 어떤 도시냐고? 미국 텍사스주의 ‘엘패소’라는 시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국경도시로 약 100만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멕시코 마약의 해상유입을 원천 봉쇄하자 후아레즈가 유일한 육상경로가 되면서 마약 카르텔들 간 격전지로 전락하게 된다. 뺐고 빼앗는 싸움 속에 늘 총격전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경찰력도 사라져 버렸다. 놀라운 건, 고가 다리에 목과 팔다리가 잘린 시체들이 걸려있고, 도로 한 복판에서 총격전이 벌어져도 사람들은 일상을 즐긴다는 것. 이거 실화냐고? 실화다. 그렇다. 후아레즈는 동물로 치면 바로 육식동물들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이후 영화는 한 마리의 씩씩한 어린 양 같은 케이트의 시선을 따라 간다. 팀은 후아레즈의 늑대들을 사냥하기 위해 더 큰 늑대로 변해 학살에 가까운 행위를 저지르고,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된 케이트는 계속 법과 정의를 논하며 따진다. 그런 그녀에게 덩치 큰 늑대 같은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는 임무를 마친 뒤 이렇게 말한다. “작은 지방으로 가세요. 아직 법이 존재하는 곳으로. 여긴 늑대들이 우글대는 곳이오.”

물론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의 세계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결국 케이트도 여전히 잔인하기만 한 세상 앞에서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다. 그렇게 선과 악, 정의의 의미가 무색해질 즈음. 며칠 전 아빠를 잃은 후아레즈의 한 소년은 그날도 어김없이 친구들과 좋아하는 축구를 한다. 소년이 골대를 향해 막 슛을 날리자 인근에서 갑자기 총격소리가 울려 퍼지고, 멈춰 선 소년의 미간은 잠시 일그러진다. 하지만 소년은 이내 공을 향해 다시 돌진한다. 여기서도 뜨는 같은 태양 아래였고, 어디서든 삶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었다.

2015년 12월 3일 개봉. 러닝타임 121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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