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의 스톱오버(stopover)
백로의 스톱오버(stopover)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9.2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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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 서식지가 울산에는 모두 4곳 있다. 한 곳은 알을 낳고 품고 새끼를 키우는 번식지다. 나머지 3곳은 잠만 자는 숙영지다. 남구 삼호동의 삼호대숲은 우리나라 최대의 번식지다. 울주군 웅촌면 고연리 괴천대숲, 울주군 범서읍 구영리 강당대숲, 북구 천곡동 아파트단지 내 숲 등 3곳은 숙영지다. 숙영지 3곳을 꾸준히 관찰한 결과 현재까지는 번식지로 확대·발전한 경우는 없으나 산업도시와 생태도시로 더불어 나아가려는 울산으로서는 생태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한편 생태자원에 대한 관리 부족으로 현재 괴천대숲은 그 중심부가 사라졌고, 강당대숲은 공원 정비로 부분적으로 제거됐다. 달천 숲의 경우 아파트단지가 형성되기 전부터 백로의 숙영지로 이용되던 곳이다. 4천㎡ 정도의 숲은 지금도 백로 무리가 잠자리로 이용하고 있다. 이곳의 환경을 살펴보면 숲이 개발되지 않는 한 백로가 머물거나 잠자는 곳으로 계속해서 찾을 수밖에 없는 지형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아파트에 둘러싸여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아 안정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둘째, 동쪽이 개방되어 이소와 귀소 때 활공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셋째, 인가 주변이라 백로류의 천적인 수리부엉이, 삵 등 포식자의 접근이 쉽지 않다.

예시한 3가지 환경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포식자로부터 살아남는 것’이다. 수리부엉이는 우리나라에서 관찰되는 올빼미, 칡부엉이, 쇠부엉이 등 올빼미과 조류 중 몸집이 가장 크다. 날개길이가 약 70cm이며 긴 귀깃이 특징이다. 편평한 얼굴에 앞으로 모아진 큰 눈을 가진 야행성 맹금류다. 예리한 부리와 날카로운 발톱은 포식자로서 완전 무장된 모습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많이 잡는다’는 속담에서 짐작이 가듯, 해뜨기 전에 먹이터로 날아가는 백로의 먹이사냥 습성으로 볼 때 '좋은 숙영지'다.

‘백로의 스톱오버(stopover)’라는 표현은 여름철새인 백로류가 월동지로 이동하는 도중 일정한 장소에서 짧게는 하루, 길게는 1주일 정도 머물렀다가 다시 목적지로 날아가는 행동변화를 일컫는 말이다. 스톱오버는 레이오버(layover) 혹은 트랜스퍼(transfer)와 같은 개념으로 여행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것도 스톱오버라 부른다. 결국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 중간에서 멈췄다가 다시 목적지로 향하는 것을 표현한 단어이다.

모든 동물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죽음의 대열에 동참하면서 스톱오버를 동반하게 된다. ‘성장’이란 말 역시 죽음에 도달하는 진행과정이며 스톱오버인 셈이다. 천수(天壽)를 누려 자연사(自然死)한 개체라면 그것은 당연히 생존전략에 성공한 개체다. 우연사 혹은 비명횡사 등으로 그렇게 되지 못한 개체라면 대부분 단명(短命)하고 생존전략에서 도태된 개체라 볼 수 있다. 장수와 단명은 인간의 삶의 영위(營爲)에서도 조류의 서식(棲息)에서도 나타나며 환경과도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피곤과 회복의 반복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의 휴식(休息)과 철새의 스톱오버가 필요한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휴식과 스톱오버는 수명의 연장과 유관하다고 보는 것이다.

‘휴식(休息)’이라는 한자를 분리해 보면 ‘길게 쉬는 휴(休)’와 ‘짧게 쉬는 식(息)’이 분자로 결합된 단어임을 알 수 있다. 다시 확대하면 휴는 ‘사(死)’에 비유되며 식은 ‘생(生)’에 비유된다. 휴가(休暇)는 제법 긴 기간을 가짜로 죽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휴게(休憩)는 휴식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겨울철새 흑두루미의 스톱오버는 일본 이즈미에서 출발한 개체가 우리나라 천수만에서 머물면서 볍씨, 옥수수 등 곡물로 체력을 보강해 다시 번식지인 시베리아 지역으로 떠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매년 3월 말에서 4월 초까지 천수만에서 반복되어 관찰된다. 여름철새인 백로의 경우 번식지에서 월동지로 이동하는 도중 울산 지역에서 주로 스톱오버를 한다. 9월 초순에서 중순까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조류의 생태적 현상이다.

달천 아파트단지 내 숙영지에 모여드는 백로 역시 스톱오버 개체일 가능성이 높다. 9월의 개체수 증감이 일정하지 않고 들쭉날쭉 하는 것도 스톱오버 현상 때문이다. 조류의 이동에서 스톱오버는 논스톱보다 수명을 연장시킨다. 텃새보다 철새의 수명이 단명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서식지와 번식지 혹은 월동지로 이동하는 동선(動線)이 길고 반복되기 때문이다. 철새의 우연사는 서식지보다 번식지와 월동지로 오가는 반복된 주기의 경로에서 예기치 못한 포식자의 출현, 이상기류의 발생, 충격 등 돌발상황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자주 나는 새가 갑자기 그물에 걸리는 재앙이 있다.(數飛之鳥忽有羅網之殃)’고 말한 야운의 비구의 잠언(箴言)도 반복된 주기의 이동에 의한 조류의 재앙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짐승이라 해도 동선의 재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함부로 다니는 짐승은 화살의 화가 있다.(輕步之獸非無傷箭之禍)’는 말은 야은의 또 다른 경계의 말이다. 사람 역시 동선이 길고 잦으면 좋은 결과보다 나쁜 결과를 더 겪게 된다는 것도 차제에 유념해야 함을 전하고 싶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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