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학 칼럼] 이웃집 지붕으로 올라간 호박의 임자는?
[박정학 칼럼] 이웃집 지붕으로 올라간 호박의 임자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9.1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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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 겨레의 지혜와 관련해서 강의를 할 때 종종 “내 집에 심은 호박넝쿨이 이웃집 지붕으로 올라가 열매를 맺었다.

이 호박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다. ‘당연히 내 것이지!’라는 대답으로부터 ‘아니야, 옆집 지붕에 열렸으니 옆집에서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등으로 논란이 된다.

나는 그 해법을 겨레 얼, 천부경과 홍익인간을 연결시켜 제시하고 토론을 한다. 이 호박은 분명히 내가 우리 집에 심은 뿌리에서 뻗어나간 넝쿨에 열렸다. 그러니 당연히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옆집에서 ‘그늘이 진다’ ‘지붕을 상하게 한다’는 이유로 그 호박넝쿨을 잘라버렸다면 호박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것을 감내한 옆집도 얼마간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심지어, 중국의 동북공정처럼 현재 자기 땅에 있었던 모든 나라의 역사를 자기 민족의 역사로 만드는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면 당연히 옆집의 소유가 된다.

이 문제를 두고 두 집이 서로 자기 것이라는 논리만 내세우고 싸운다면 결코 해결은 될 수 없다. 법적으로 따진다고 해도 판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웃 간에 법정다툼을 벌인다면 손가락질을 받기에 충분하다.

중국이나 일본과의 역사 싸움도 마찬가지다. 뿌리는 우리 민족이지만, 그 후손들이라는 열매는 중국과 일본 땅에 많이, 오랫동안 살아 왔으니 얼마 전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 말처럼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고 하거나, 임나일본부처럼 주객을 전도시키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잘못이지만, 그 후손들도 고구려, 가야와 백제가 ‘우리 조상들의 역사다’고 말할 수는 있다.

북한과 우리가 서로 자신이 정통이라고 다투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가? 간단하다.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우리 것’이라고 해결했다. 그 호박으로 요리를 만들어 옆집 사람들과 함께 가든파티라도 하면서 ‘이 호박이 두 집의 기를 받아 잘 자랐다’면서 정겹게 이웃 정을 나누는 잔치를 벌이거나 나눠 먹은 것이다.

내가 어릴 때 뒷집 옆에 있는 우리 밭의 호박넝쿨이 그 집 담장으로 올라가서 열매가 맺자 어머니가 그 호박으로 만든 호박전을 ‘뒷집에 갖다 주라’고 하여 심부름을 한 경험이 새삼 떠오른다.

그것이 바로 천부경과 홍익인간 사상이 말하는 ‘우리가 넘이 아니라 하나’라는 우리 겨레 고유의 ‘어울림 생각 틀’의 실천이다.

우리 조상들은 홍익인간 재세이화라고 하여 이런 원리를 아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실천해야 ‘우리’가 된다는 것을 강조했었고, 그렇게 생활 속에서 실천을 했던 것이다.

우리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DNA 속에는 ‘너와 내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어우러져 하나 됨의 관계’라는 조상들의 생각 틀이 자리 잡고 있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노래와 춤과 음식이나 드라마 등 모든 행동에 묻어나온다.

그래서 ‘무한 경쟁’이라는 신자유주의식 세계화 논리로 인해 생긴 1% 대 99%의 극단적 양극화에 지쳐 있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우리’라는 하나 됨의 에너지가 따뜻하게 감싸주기 때문에 우리 문화에 열광하는 한류가 형성된다고 본다.

지금은 서구 물질문명의 영향으로 ‘생존은 경쟁’이므로 내가 이겨야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호박도 내 것 네 것 따지지 않듯이 역사도 내 것 네 것 따지지 말고 ‘우리 것’이라고 보고 함께 연구하여 같은 뿌리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예상 외로 쉽게 한·중·일을 넘어 인류 전체가 ‘우리’ 되는 길이 보일 것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 ‘생존은 조화’라는 어울림의 DNA를 찾아 한류에 논리를 더해줌으로써 우리 겨레가 인류사회의 희망이 되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을 기대한다.

<박정학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예비역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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