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학 칼럼] 어른 문화
[박정학 칼럼] 어른 문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8.2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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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으로서 ‘어른’을 공경해 왔었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 탄핵, 대통령 선출 및 인사청문회 등 일련의 과정에서 서로를 비하하는 행태를 경험하면서 그런 분위기가 사라진 것을 느낀다. 분명히 나라의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생님, 사장님 등 리더들은 있지만 이들 모두가 ‘공경 받는 어른’이 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리더’와 ‘어른’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한다.

서양의 ‘리더(leader)’는 ‘법적으로 주어진 권한을 가지고 다스린다’ ‘앞에서 이끌어 간다’는 뜻, 즉 ‘통치하는 사람’이라는 말에 가까운 의미가 담겨져 있다. 중국 황제를 뜻하는 ‘천자(天子)’ 역시 비슷하다.

반면, ‘어른’이란 말은 이와 좀 다르다. 결혼을 하면 남녀가 어울려서 한 가정을 이루니 ‘어우른 이’로서의 어른이 되고, 나이가 많으면 그간 여러 사람, 여러 가지 입장, 남녀노소들과 ‘어울리거나’ ‘어우른’ 경험이 풍부하니 ‘나이 든 어른’이 되며, 높은 직책에서 내부의 여러 기능과 요소들을 잘 어울러서(‘조화’시켜) 조직을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이끌어가는 사람은 ‘지도자로서의 어른’이 된다. 어느 경우든지 ‘어른’에는 ‘어울린다’ ‘어우른다’는 뜻과 연결된다.

여기서 지도자로서의 ‘어른’은 나이나 자신의 직책에 주어진 권한이나 권력을 행사해서 조직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속에서 이해관계가 얽힌 각 구성원들의 임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모든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조직목표 달성을 위해 한 덩어리가 되게 만드는 사람이다. 따라서 ‘어른’은 너와 내가 ‘우리’로 어우러져야 한다는 생각의 틀에서 나온 말인 것이다.

아기가 갓 태어났을 때는 엄마만 알다가 점차 아빠, 형, 동생, 할아버지 등 가정 구성원들을 알게 되고, 유치원이나 학교에 나가면서 친구와 선생님 등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하면서 사회화되어 간다. 인류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어울리기’를 잘 해야 최소한의 자기 권리를 누릴 수 있고, ‘어우르기’까지 잘 하면 지도자로서의 어른이 되어 공경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모든 종교에서 권장하는 ‘사랑’ ‘인(仁)’ ‘자비’ 등은 모두 ‘나’를 넘어 ‘우리’로 만드는 어울리기와 어우르기의 기본 덕목들이며, 제사나 축제(잔치) 등의 우리 생활문화에 빠지지 않는 술, 노래와 춤, 유희 등은 신바람이 나게 하여 어우러지게 만드는 기법들이다.

나는 요즘도 가끔 집사람이 좋아하는 중국 무협소설이나 드라마를 종종 보게 되는데, 그 주제는 거의 대부분 부모와 사부에 대한 ‘복수’가 중심에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런 얽힌 원한의 타래를 푸는 해원(解寃), 용서와 화해를 통한 상생(相生)을 더 중시하는 ‘살풀이’는 많지만, 대를 이어 원수를 갚는 문화는 없다.

지금도 우리 울산 삼동초등학교 32회 동기들 간에 좀 속상한 일이 생기는 경우가 있으면 누군가가 나서서 술자리를 만들어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고, 노래를 부르며 가까워지게 한다. 학교에서 그런 원리를 배운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생활 속에서 어른들로부터 배운 오래 된 지혜인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17년 전에 위암 선고를 받았으나 수술을 하지 않고 2달 만에 ‘용서명상’으로 치료한 바 있는데, ‘미움’이 만든 병을 ‘용서’로 치료하는 조상들이 남긴 ‘어울림’의 지혜를 몸으로 체험했던 것이다.

요즘같이 온 나라가 분열되어 있을 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지도자는 훌륭한 리더가 아니라 우리 겨레 고유 생각의 틀인 ‘우리’가 되도록 어우르기를 잘하여 국민들로부터 공경 받는 ‘어른’이다. 새 정부에서는 ‘어른 학교’라도 세워서 이런 어른 문화를 가르친 후에 장·차관에 임명하고, 국민들도 그런 사람들을 국민의 대표로 뽑았으면 좋겠다.

박정학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전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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