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8.1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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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한 라면회사가 이 광고 카피의 대히트로 인기를 끌게 되면서 후발업체로서의 서러움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민주화 데모가 한창이던 1986년, 운 좋게도 그 당시 세계를 누비던 D그룹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세상이 파랗게 보이고 몸은 하늘 높이 나는 새와 같이 가벼웠다. 모두가 그랬듯이 필자 역시 누구에게 뒤질세라 앞만 바라보고 이리저리 부딪히며 승진에서 앞서갔다.

그러던 중 1997년 IMF를 맞이하여 서울 본사로부터 부서 직원을 감원하라는 명을 받게 된다. 10여 년을 같이 근무하던 직원을 어떻게 내 손으로 퇴직시킬 수 있겠는가. 한 달쯤 고민하다가 결국 5명을 관계사로 이전 근무시키기로 하면서 마무리되었다. IMF 구제금융을 졸업하고 이제는 정상화되는가 싶더니, 다니던 회사가 공장을 증설하면서 4~5년째 경영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05년 12월, 갑자기 회사를 퇴직하게 되어 눈앞이 캄캄해지고 숨이 탁 막혔다. 2달 동안 전국으로 알고 있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평소 잘 알던 지인으로부터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공장장 자리를 소개받고 중소기업에 재취직하게 되었다.

20년 동안 대기업에서 보고서와 품의서에 결재하며 근무하다가 막상 중소기업에서 새로운 업무를 하게 되니 도무지 아는 것이 없었다. 우선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서류와 보고서를 컴퓨터로 작성하는 방법부터 배웠다. 스스로 ‘너무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하고는 ‘회사의 신입사원으로 돌아가 새로이 배운다’는 각오로 임했다. 근무 외 시간을 활용하여 회사 직원에게 산업용 가스에 대한 기본지식부터 배웠다. 예전 회사에서는 공장 설비만 관리하다가 전국적으로 영업과 관리를 통합하게 되니 모든 것이 새롭고 서툴기만 하였다.

그 중 가장 크게 당황한 일은 거래사인 대기업을 찾아가 업무 협의를 하고 대기업 직원들을 상대하는 일이었고 부담스러웠다. 옛날에는 대기업과 대기업의 동등한 입장에서 협의를 하였는데 지금은 항상 갑과 을 입장에서, 아니 을도 아닌 병의 입장에서 협의를 하니 “이런 세상이 다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많이 고민하였다. 산업화가 이루어진 1970년대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하나의 동반자 관계로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이끌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을 모태로 삼아 동반성장을 꾀하는 사회로 생각하였다. 또한 2010년에는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하도록 정부에서 부단히 노력하였는데 현실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2011년 1월 용연용잠단지 공장장협의회에 가입하여 2년 뒤인 2013년부터는 총무를 맡게 되었다. 먼저 회원의 친목도모를 꾀하며 회원을 확충하였다. 초기 18명이었던 회원수가 2016년 말에는 39명으로 2배 증가하였다. 총무직을 수행하면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대한 업무의 불편한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최근 울산광역공장장협의회 사무총장을 맡게 되었다. 2개의 중책을 겸직하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물론 공장장협의회 회원 친목도모와 각 회원사 간의 업무 협조가 최우선 임무다.

그리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相生)할 수 있는 비책을 찾는 것이다. 대기업이 할 수 없는 영역과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연결하고, 중소기업이 할 수 없는 영역과 대기업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연결하고자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편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대기업에서 퇴임한 공장장 및 임원들로 구성된 전문경력인사지원센터(NCN)와 함께 해결하려고 한다. 지금 제4차 산업혁명이 밀려오고 있다. 울산경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차준기 에스디지 공장장, 울산광역공장장협의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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