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데 넘이가?” ⑦
“우리가 어데 넘이가?” ⑦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6.22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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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호에서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이 ‘너와 내가 어우러져 우리가 되라’는 어울림의 생각 틀이라고 소개했었다.

그런 사상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당연히 우리 선조들이 그 이전 오랫동안 살아온 생존경험에서 얻은 것이고, 그러므로 역사 속에서 그 흔적을 찾아야 한다.

신화학자들은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난 500만 년 전부터 역사시대가 되어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약 5천년 전까지 환경을 극복하며 살아온 생존과정에서의 정신활동 경험의 축약이 민족별로 다른 ‘창세신화’라고 한다.

사람이 살아온 99.9% 기간의 역사를 압축한 것으로 그 속에 각 민족의 원초적 사유방식이 들어있으므로 ‘민족신화’라고도 한다. 홍익인간 사상이 ‘우리 겨레의 창세신화’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담과 이브가 나오는 성경의 유대민족 창세기는 알면서도 정작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 민족의 창세신화는 잘 모른다. 그것을 가르쳐야 할 역사교과서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창세신화가 있다.

우리나라 신화학자들은 우리 민족 창세신화를 무당들이 부르는 노래(巫歌), 즉 무속신화와 구전설화에서만 찾고 있는데, 무가와 전설의 불완전성과 비교할 때 그 정도의 가치는 있고, 우리 겨레의 생각의 틀을 나타내는 풍부한 신화소가 들어있는 창세신화가 『환단고기』나 『규원사화』 등에 보인다.

비록 위서론 시비에 걸려 있기는 하지만, 다른 데는 없는 우리 겨레의 사유방식과 연결시킬 수 있는 내용이라면 그냥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

몇 가지 우리 겨레의 창세신화를 보자.

- ‘사백력 하늘에서 신이 어느 날 동남동녀 8백 명을 흑수, 백산의 땅으로 내려 보냈다.’(『환단고기』「삼성기전 상」)

- ‘인류의 조상 나반이 아이샤타에서 아만을 만나 신의 계시에 따라 혼례를 올리고 낳은 후예들이 구환의 무리다.’, ‘윗 세계에 계신 삼신 상제께서 천하대장군으로 지상의 일을, 지하여장군으로 지하의 일을 주관하게 했다.’(『환단고기』「삼성기전 하」와 「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

- 환인(桓因)이라는 주신이 여러 신들을 거느리고 우주를 열고, 땅과 바다를 정하여 만물 번성케 하였으며, 사람을 천지인의 삼재로서 자격을 갖춘 후에 만물의 주인이 되게 하였다. (『규원사화』「조판기」)

-햇볕과 8여의 음만이 있는 가운데 마고가 실달대성을 끌어당겨 천수의 지역에 떨어뜨리자 여기서 나온 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음상과 서로 어우러져 풀과 나무, 새와 짐승 등 만물이 태어났다. 인구가 늘어나 지유(地乳) 대신 포도를 먹은 오미의 변으로 천성을 잃게 되어 그것을 복원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부도지』)

- 미륵님이 천지와 별을 만든 후 한 손에는 은쟁반, 다른 한 손에는 금쟁반을 들고 하늘에 빌자 금쟁반에 금벌레 다섯 마리, 은쟁반에 은벌레 다섯 마리가 떨어져 각각 사내와 계집이 되고 서로 부부가 되어 사람이 태어났다.(함남 함흥 지역 ‘창세가’)

- 창세여신 아부카허허(천신=물거품)가 공기와 빛, 자기 몸으로 지신(地神=공기)과 빛의 신을 만든 후 그들을 통해 만물을 만들었다. 이렇게 창조여신은 하나이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이다.(만주 지역 창세신화 ‘천궁대전’)

이러한 우리 창세신화는 몇 가지 성경의 창세기와 다른 점이 있다.

첫째, 태초의 세계가 어둠이 아니라 밝음에서 출발한다.

둘째, 창조신이 남성이 아닌 여성이고 여성을 먼저 만들었다.

셋째, 혼자서 모든 것을 창조하기보다 여러 신(최소 세 신)이 함께 활동한다.

넷째, 창조론만이 아닌 개벽론, 진화론, 조화론적 창조신화가 다 섞여 있다.

넷째, 신이 절대자가 아니라 사람도 천성(=神性)을 가진 신인합일 사상이다.

특히 부도지의 마고 신화가 대표적인 민족신화라고 볼 수 있는데, ‘세상 만물이 기화수토 네 요소가 빛과 소리를 통해 어우러져 형성된다’는 어울림의 생각 틀, 홍익인간 사상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 역사는 우리 민족 고유 생각의 틀을 담은 민족창세신화로 시작해야 한다.

그럴 때 겨레의 얼과 연결되는 홍익인간 사상도 바르게 해석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박정학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전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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