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메이드 거리로 특화시켰으면 하는 게 꿈이죠”
“핸드메이드 거리로 특화시켰으면 하는 게 꿈이죠”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7.06.20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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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목요일에만 여는 ‘삼산 프리마켓’
 

남구 월평로와 맞닿은 길거리에 목요일에만 서는 장이 있다.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그렇다고 시끌벅적한 난장 분위기는 아니다. 대부분 예의범절에도 밝은 40대 가정주부층이 이 장터의 주인들이기 때문이다.

찾아간 때는 지난 15일(목요일) 오전 11시 무렵. 차려놓은 매대(賣臺)의 숫자가 열 손가락을 거뜬히 넘은 시점이었다.

‘여인 천국’이나 다름없는 목요장터에 얼굴을 내민 30대 초반의 남정네가 매대 정리를 막 마치고 허리를 펴는 B여사 앞에서 너스레를 떤다. 지난 가을 이곳에서 커피를 팔다가 낯이 익었다는 A씨다. 유머감각이 둘째가라면 서러운 B여사가 재치 있게 말을 받는다. 바로 옆자리의 C여사도 한 마디 거든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 아닌가.

A씨=“오늘, 왜 이리 이뻐?” B여사=“나 원래 이쁘잖아.” C여사=“월래는 기장 밑이 월래지.”

까르르∼. 초장부터 웃음판이다. 프리마켓(free market)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곤 한다.

“상가 살리자”… 가게주인들이 의기투합

‘삼산 프리마켓’이 처음 세상 밖에 모습을 선보인 것은 지난해 봄의 일이다. 그 출발의 중심에는 남구 삼산동 1507-9번지에 ‘예쁜 그릇가게 부뚜막’을 차린 양미화씨(45)가 있다.

무거운 짐을 본의 아니게 맡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동료 여상(女商)들 사이에선 ‘대표님’으로 통하는 삼산 프리마켓의 마당발이다. 이날도 이곳저곳 불려 다니며 잔심부름을 거들어야 했다. 그 서슬에 인터뷰 차례는 한참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여기 가게들이 몇 군데 있긴 해도 평소 같으면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거리에요. 그래서 몇 분이 만나 궁리했죠. 돌파구를 같이 찾아보자고….”

사실 남구문화원 네거리∼삼산현대아파트 사이에 나 있는 인도변인데도 인적은 아주 뜸한 편이다. ‘죽은 상가(商街)나 다름없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반란(?) 모의에는 가게주인 네댓 명이 가담했다. 용케도 그 모의는 의기투합으로 이어졌다. “그래, 프리마켓! 우리 힘으로 한 번 해보는 거야.”

SNS로 그릇가게 소식을 알려오던 ‘부뚜막’ 주인 양미화씨가 ‘울산 삼산 프리마켓 대표’ 직을 맡은 것도 바로 이 무렵의 일이다. 양 대표는 이때부터 삼산 프리마켓의 알림이 역할도 겸하기 시작했다. 밴드와 카카오스토리 채널을 이용해 인터넷 판매망을 넓혀 가고 있다. 가게 주인들의 자발적인 의지가 프리마켓을 존재하게 했다는 점이 사뭇 특이하다.

 

▲ 지난 15일 오전 삼산프리마켓 셀러(점주)들이 한자리에 모여 러브모양을 그려 보이며 우정과 단합을 과시하고있다.왼쪽에서 두 번째가 양미화 대표.

많은 날 200명… 핸드메이드 제품 절반

홍보효과 덕분이었을까? 삼산 프리마켓이 마침내 뜨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입소문이 고객과 셀러(seller)를 한꺼번에 불러왔다. (양 대표는 ‘셀러’라는 표현을 즐겨 구사한다.) 이웃도시 양산서 문의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많은 날은 손님이 하루 200명이 넘을 때도 있었어요.” 그러나 셀러의 숫자는 들쑥날쑥 기복이 있었다. ‘히트상품’이 셀러 증감의 가늠자였을까?

그래도 요즘은 매대 차리는 셀러가 16∼17명은 좋이 된다. 파는 상품도 다양하다. 옷가지(의류), 도자기 소품, 손뜨개 소품, 천아트 작품에 누룽지, 식혜, 나물, 반찬, 건어물 같은 먹을거리도 제법 푸짐하다. 가장 많이 매대에 오르는 상품은 퀼트 작품을 비롯한 핸드메이드 제품(수제품)이다.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게 양 대표의 귀띔이다.

그래서일까. 양미화 대표에겐 그녀 나름의 구상과 꿈이 있다. 물론 여러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야겠지만, 삼산 프리마켓 일대를 소문난 ‘핸드메이드 거리’로 특화시켜보고 싶은 꿈이다. 남구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그런 꿈….

“골목상권 살리기 자구노력, 지원 있었으면”

궁금하던 차에 행정당국의 조언은 얻고 있는지, 관계는 괜찮은지 넌지시 물었다. 조금 예상은 했던 답변이 돌아왔다.

“봄이니까 지난 4월쯤이었을 거예요. 남구청에서 민원이 접수됐다고 알려 왔어요. 프리마켓 때문에 보행에 지장이 있다는 민원이었던가 봐요.”

담당공무원과 대화를 나누었다. ‘보행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선에서 양해가 이루어졌다. 그 뒤론 매대가 인도(人道) 가장자리 가로수 쪽으로 치우치는 일이 없도록 한결 더 신경을 쓰게 됐다. 동료의식으로 똘똘 뭉친 셀러들은 양 대표가 전하는 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호흡을 맞추어 갔다.

자리 잡는 일에도 잡음이 안 생기게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키워 갔다. 좋은 자리를 먼저 차지하려고 다투는 일도 없었다. 양 대표의 양순하고 민주적인 리더십이 화합된 분위기를 이끌었을 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매대 세울 자리는 한동안은 달마다 제비뽑기로 정했죠. 이번 달에는 먼저 오신 분 뜻대로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고르도록 방법을 바꾸었지만….” 말하자면 선착순(先着順)으로 자리를 정했다는 얘기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만을 제기하는 셀러는 없다. 모두 스스로 동의했으니 그대로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일 테니까.

굳이 희망사항을 말하라 한다면 하고 싶은 하소연이 있다고 했다. 삼산 프리마켓과 같은 ‘비정규적 장’을 앞으로도 걱정 없이 운영해나갈 수 있도록 행정당국이나 지방의회에서 관계규정을 완화하거나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한 자구(自求)의 몸부림을 이해하는 선에서 그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달라는 얘기로 들렸다.

친교·소통 마당… 혹서·혹한기 ‘공치는 날’

하지만 다들 고민이 있다. 아주 더운 혹서기(7∼8월)와 아주 추운 혹한기(12월, 1∼2월)에는 매대를 거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손님들에 대한 배려이자 자신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따라서 6월은 목요일인 22일과 28일, 단 이틀 더 기회가 있을 뿐이다. 그것도 비라도 오면 ‘공치는 날’이 된다. 선선해지는 9월이 오기 전 두 달 동안은 싫어도 프리마켓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다.

양미화 대표는 그 시간적 공간을 SNS 활동으로 메울 참이다. 고객관리 차원의 일이다. 사실 매상의 80%는 인터넷 판매로 채우고 있다. ‘죽은 상가’에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임대료를 감당할 만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처지는 동료 셀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셀러 분들, 모두 다 참 착해요. 40대 가정주부가 제일 많고. 하지만 자기 가게를 갖고 있는 분들도 적지 않아요. 공통점은 판로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겠죠.”

그렇다고 장삿속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재미가 있는데다 친목도 다질 수 있으니 이곳을 찾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재미에 소일삼아 찾는 분도 있다고 했다. 양 대표는 내친김에 월 1회 회식 자리도 마련한다. 친교와 소통의 시간인 셈이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다 보니 놀랄만한 변화도 생겼다. 한우음식점 하는 이웃가게 얘기다. “평일엔 오후 5∼6시가 돼야 가게 셔터를 올렸는데 목요일엔 점심나절부터 연답니다. 도시락 싸오던 셀러 분들이 이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기 시작했거든요.”

고향은 경남 진주. 울산서 연애결혼한 남편과의 사이에 초등학교 5학년 자녀가 있다.

글·사진=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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