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너무 친절한 건 아닐까?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너무 친절한 건 아닐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6.15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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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년이 흘러버린 ‘아빠 어디가?’란 예능프로그램은 매회 아이들에게 어떤 과제를 부여했다. 출연진은 3세부터 8세 정도까지의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그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해 내었고 과제를 해결한 아이들의 얼굴은 늘 환하고 밝았다. 스스로 해 냈다는 성취감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그 밝은 모습의 아이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프로그램의 전남 화순 편에서 출연자 아이들 2명에게 내려진 특명은 ‘방앗간에서 고춧가루 빻아 오기’였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아이는 먼 길을 가게 되었는데 그동안 한 아이는 시종 말없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 아이의 머릿속에는 방앗간이 어떤 곳인지 그려지는 이미지가 없었고 이 빨간 고추가 고춧가루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던 탓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도착해서 기계 속에서 빻아져 가루가 되어 나오는 고춧가루를 보고 신기함과 감탄으로 얼굴빛이 환해졌다.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온 그 아이의 꿈은 어느새 ‘고고학자’에서 ‘방앗간 주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꿈이 방앗간 주인이라고 밝게 말한 이 신기한 경험이 이 아이의 인생에 미칠 영향은 무엇일까?

우리 어른들이 생각해야 할 과제이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 생활 속에서 이런 고민에 빠질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또한 내가 뭔가 해 냈다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어른들이 뺏고 있지는 않은가?

지난 3월 입학식을 마치고 약 200명의 입학생은 각자 새로 만난 담임선생님이 인솔해서 교실로 가도록 하고 교장인 나는 학부모님들만 강당에 남게 해서 학교 교육의 방향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중 한 가지 부탁사항으로 “이제 입학도 했으니 자녀가 혼자 등교하도록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정말 염려스러우면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이 학교 오가는 길에 친구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횡단보도를 혼자 건너보게 하며, 어느 가게에 어떤 신기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지도 볼 기회를 주시라고 말씀 드렸다. 등굣길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할 시간도 드렸다.

부모님들의 동의가 있었던가 보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학교는 차량으로 등교하는 학생도 줄고 학부모님 손을 잡고 오는 아이들도 거의 없다.

그런데 지금 몇몇 부모님이 아침마다 자녀의 가방을 들고 같이 등교하고 계신다. 어떤 부모님은 현관에서 신발까지 갈아 신겨서 올려 보내기도 한다. 참 따뜻한 장면임에도 내 맘은 편하지 않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이야기이다. 부모님은 최초의 선생님이고, 또한 최고의 선생님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 셋이 모이면 그 중 한 명은 선생님이라는 말도 있다. 이미 우리 어른들은 다 알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사회적인 분위기는 아이들에게 너무 친절해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어른들이 다 나서서 해 준다.

비단 등굣길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길이 너무 친절한 부모님, 선생님, 어른신들 덕분에 빼앗기고 있는 것은 없는지 고민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어른이 되자고 제안해 본다.

정기자 매산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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