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정석
공간의 정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6.1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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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공간에 따라 읽는 책이 다르다. 거실 소파에 누워 느긋하게 읽는 책은 다음 달까지 읽어야 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고, 화장실 갈 때 집어 드는 책은 얼마 전에 산 『돈키호테』인데 책갈피가 술술 넘어가서 똥 누는 시간 동안 읽기에 딱 맞다. 가끔 책상에 앉아 읽기도 하는데 반납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빌린 책인 경우이다. 얼마 전에 읽은 책 『여자전(女子傳)』은 어디에 어울리는 책일까? 아마도 현관? 스치고 가는 공간에 어울릴만한 책. 즉, 마음에 들지 않은 책인데 억지로 읽어야만 하는 책이라는 뜻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 공간에 있는 책을 집어 읽는다. 공간을 넘나들며 책을 읽는 일은 더는 낯선 일이 아니다. 어차피 이 공간, 저 공간으로 옮겨 다니는 것은 내가 아니던가. 각각의 공간에 책을 놓아두고 읽는 일은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한 권을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책을 읽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공간의 정석 첫 번째가 나온다. 즉,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지 공간이 아니다.

가끔 나 말고 다른 식구들이 청소하는 경우가 있다. 신기하게도 식구마다 청소하는 순서가 다르다. 나는 거실, 부엌, 안방, 서재, 작은아이, 큰아이 방의 차례로 청소기를 민다. 남편은 안방 대신 서재를 먼저 청소한다. 그다음은 내 순서와 같다. 큰아이는 거실 다음에 제 방으로 청소기를 가져가고, 작은아이 역시 거실을 거쳐 곧장 제 방을 제일 먼저 청소한다. 우리 식구 모두 거실을 뺀 자신의 공간을 먼저 챙긴다. 거실을 처음 청소하는 것은 단지 거실이 전원을 연결하는 곳이자 각자의 공간으로 가는 중간지점이기 때문인 것 같다. 공간의 첫 순위가 다른 것은 왜일까? 아마도 공간을 차지하는 마음의 차례는 아닐는지 짐작해 본다. 짐승도 영역을 표시하는데 인간이야 오죽하랴. 내 공간, 내 영역을 일단 확보하는 차원에서 가장 먼저 자신의 방을 치우는 것은 아닐까? 역시 영역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공간의 정석 두 번째가 나온다. 즉, 누구나 공간에 영역표시를 한다.

얼마 전 아는 이와 장미 축제 행사장에 다녀왔다. 행사장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는 잠시 행사장 입구 벤치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우리 뒤에서 뭔가 폭발음이 들렸다. 놀라서 일어섰는데 다름 아닌 불꽃놀이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가까이 불꽃놀이를 보는 일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둠을 타고 찰나의 빛줄기가 펑펑 터졌다. 폭죽을 뿜는 곳에서 적당히 떨어져야 불꽃이 더 잘 보였다. 눈을 하늘에 둔 채 우리는 뒷걸음질 쳤다. 쉴 새 없이 폭죽이 쭉쭉 올라갔다. 빛깔과 모양과 소리가 다른 불꽃이 깜깜한 밤하늘을 밝힐 때마다 탄성과 환호성이 커졌다. 축제에 왜 불꽃놀이를 하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만한 이벤트였다. 마주 보는 우리의 얼굴이 오색 빛으로 번질거렸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장미원은 이미 시끌벅적했다. 연예인이 나와 춤과 노래를 하는 중이었는데 왠지 장미 축제와 어울리지 않았다. 사회를 보는 개그우먼의 목소리에는 흥이 아닌 안간힘이 묻어 나와 장미원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우리는 장미원 한 편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밤새 장미원이 열리는 줄 알고 돗자리까지 준비했는데 밤 열 시가 되자 퇴장 방송이 나왔다. 아쉬운 마음에 우리는 - 그동안 일행이 늘어 넷이 되었다 - 장미원 바깥 소나무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흐를 때마다 빛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공원의 조명, 그다음엔 거리의 가로등. 주변의 빛이 사라지자 신기하게 먼 곳의 빛이, 하늘의 별이 보였다. 주변의 산등성이가 먼 곳의 빛을 받아 부드러운 능선을 드러냈다. 아스라이 먼 곳의 빛과 하늘의 별빛을 받은 일행의 눈동자는 밝은 곳에서 보는 것보다 많이 반짝였다. 우리의 목소리와 눈빛으로 공간이 꽉 찼다. 여기서 공간의 세 번째 정석을 발견했다. 공간은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는다는 것.

마지막 공간의 정석은 주인이 바뀌니 공간을 쓰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동안 비밀의 공간이었던 곳의 주인이 바뀌었다. 그러자 공간은 기다렸다는 듯 자태를 드러낸다. 양복을 벗어든 채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에서 커피를 나누고, 담소와 미소를 나누는 모습은 하얀 와이셔츠 빛깔처럼 환하다. 원탁을 꺼내 평등을 드러내고 넥타이를 풀어 격식을 낮추고 자신의 양복 웃옷을 스스로 벗어 지나친 예우를 없앤 행동은 당연한 듯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신기한 게 사실이다.

자리가 다르면 보는 눈이 다르고, 처지가 다르면 시간을 내는 방법이 다르며, 서 있는 자리가 다르면 한편이 될 수 없는 법을 배운 지난겨울, 광장을 꽉 채운 촛불을 기억한다. 동시에 거리를 메운 태극기를 떠올린다. 두 개의 극단적인 구호, 상황에서 우리 각자의 자리는 달랐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더욱 아름답게 하듯이, 달빛 아래에서 소나무 그림자가 더 짙듯이, 산등성이의 부드러움을 별빛이 움켜잡듯이 서로의 공간과 마음을 모아야 한다. 내일 청소는 어느 곳부터 할까를 고민하는 사이 화장실이 나를 부른다. 돈키호테가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산초도 마찬가지. “자, 저기. 둘시네아 부인이 기다린다. 달려라 로시난테여.” 편력기사와 종자의 활극으로 화장실이 꽉 찬다.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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