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 깃든 원칙
감동이 깃든 원칙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5.14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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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끝났다. 물론 대통령 선거 이야기이다. 숨 가쁘게 달려왔다는 표현 외에 다른 꾸밈말이 필요 없는 선거 과정. 그 마침표는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고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대국민 메시지를 전하는 따위의 간단하고 소탈한 취임식이 되었다. ‘드디어’라는 부사어를 사전에서 찾아본다.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결과로. 마침내. 결국이라는 풀이말로 ‘드디어’를 설명한다. 비슷한 말은 마침내, 기어이, 끝내, 끝끝내, 결국(結局), 결국에라는 낱말이 나온다. 새삼스럽게 ‘드디어’라는 낱말이 다가온다.

안경을 쓴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부터 공공연하게 골든크로스를 꿈꾸던 후보까지 근 100여 일을 우리는 정치 속에서 살았다. 선거 때마다 나는 투표로 내 의사를 드러내는 한 명의 유권자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번처럼 선거가, 투표가 흥미로웠던 적이 없었다. 선거가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다. 저마다의 색깔로 우리나라를 이끌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의 한마디, 한마디와 행동에 관심을 기울인 적도 없었다. 그저 그들만의 리그를 연다고 투덜거렸고, 멀디먼 나라의 일인 양 정책을 살피지 않던 지난 대선, 총선, 지방 선거와는 달리 그들의 토론을 지켜보고, 정책공약을 살피고, 여론 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물론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장점과 이유를 주변 아는 이들에게 알리는 일도 했다.

그러면서 잊고 살았던, 정치가 나를 온전히 바꾸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세상을, 미래를 바꾸는 제도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렸다. 또한, 원칙이 없는 세상이, 편법이 판을 치는 세상이, 거짓말을 일삼는 이를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우리를 포함하는 미래 세대에게 얼마나 커다란 원죄를 짓는 일인지를 깨닫는 기간이었다.

빈 광장을 꽉 채운 촛불 민심, 현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을 치르면서 우리는 각자 지닌 국민의 지위와 권력이 얼마나 크고 막중한지를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정치에 눈 감은 동안 얼마나 많은 정치제도와 정치인들이 세상을 제멋대로 주물렀는지, 우리가 얼마나 그들에게 휘둘리며 살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장미 대선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을 시작으로 감았던 눈을 뜬 유권자들이 많으니 이제부터 정치를 꿈꾸는 이들이여, 긴장하길 바란다.

새롭게 대통령이 된 이의 외침은 나라를 나라답게, 든든한 대통령이었다. ‘∼답게’라는 말에서 ‘답게’를 나는 ‘원칙’이라고 읽는다. 사람답게, 남편답게, 학생답게, 개답게, 정치인답게, 작가답게라는 말은 모두 원래의 뜻에 가장 가깝게 행동하고 실천하라는 행동지침인 까닭이다. 새롭게 우리나라를 이끌 이의 다짐이 반갑다. 원칙 앞에서 아무도 자유롭지 않아서이고 보통, 비밀, 평등, 직접 선거의 원칙으로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이가 내세우는 것이기에 더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지침이 ‘∼답게’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원칙 앞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그만큼 원칙은 힘이 세다. 원칙을 내세우는 이에게 사람들은 유연성을 빗대 비난하곤 한다. 그러나 원칙은 지키라고 생긴 것이며 안 지키는 이들이 잘못된 것이리라. 물론 잘못된 원칙은 고치고 보완해야 할 일이다. 절대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 원칙인데 간혹 절대와 함께 쓰는 이들이 많아서 원칙이라는 낱말이 오염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동이 필요하다. 원칙에 감동이 섞이면 새롭고 맛이 기막힌 분자요리가 탄생하지 않을까. 따뜻한 온기가 깃든 원칙을 맛보고 싶은 요즘, 눈 뜨고 정치를 살핀다.

강물이 운반해 온 토사가 쌓여 강어귀에 이룬 모래톱이 삼각주이다. 하류에 이런 삼각주가 생기려면 강가나 바닷가의 넓은 모래벌판이나 모래사장이 쌓이고 쌓여야 한다. 모래가 쌓이면 물길이 바뀐다. 그 물길을 따라 작은 삼각형이 생기고 끝내 비옥한 땅이 생기는 것처럼 작은 원칙이 모여 큰 법이 되고 든든한 도덕이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정치가 우리 곁을 지키려면 그 첫발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정치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함께 모임을 하는 이가 내게 묻는다. 그 물음에 나는 그저 웃었다. 우리나라 정세가 많은 이들을 정치에 눈 돌리게 하지 않았냐고, 광장으로 모이게 하지 않았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말을 삼켰다. 정치인의 행동을 두고 다른 품사로 풀이하는 것을 적잖이 보아온 터, 관심이라는 낱말이 주는 뜻도 물론 천지 차이. 묻는 이의 속내가 보였지만 말을 아꼈다. 대선 토론을 지켜보는 동안 배운 원칙, 조금 더 부드러운 사람이 되자는 원칙을 세운 덕분이었다. 대립에 감동은 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는 끝도 아니고 시작도 아니다. 사람들이 사회를 일구고 사는 한 계속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함께하는 일에는 무엇보다 원칙이 중요하다. 원칙이 무너지면 처음에는 티가 안 날지도 모른다. 조금씩 천천히 변하는 물길처럼 말이다. 작은 원칙부터 지키고 보듬다 보면 커다란 원칙도 세우고 지켜질 것이라 본다.

민주시민답게, 제1 권력자인 국민답게 삶을 이어가고 싶은 소망을 비는 오후, 미세먼지가 없는 파란 하늘이 더욱 높고 깊다. 감동적인 봄날이다.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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