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칼럼] 내 늙음에 아내의 위로와 지지가 필요하다
[이정호칼럼] 내 늙음에 아내의 위로와 지지가 필요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5.07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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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은 여느 해와 달리 마구 서둘러 왔다. 탄핵 정국 이후 실시되고 있는 대통령 선거 때문이다. 5월의 대선은 1948년 5월 10일에 처음으로 실시되었던 제헌국회 총선 이후 69년 만의 큰 선거인 셈이다.

5월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참 많다. 어린이날이 있어 청소년의 달,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있어 감사의 달, 부처님도 5월에 오셨으니 자비의 달, 숲이 아름다워 계절의 여왕 등으로 불리는 5월이다. 아마도 올해는 어버이날마저도 쉬 묻혀 넘어갈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는 것이 선고(先考)의 기일이 5월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나이가 들면 부모는 이미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한다. 그 대신 자식들이 성인이 되고 손자들이 자라난다. 60대 이상 사람들의 부모는 자식 배 안 굶기는 것이 당면하던 문제였고, 그 다음이 공부시키는 것이었던바 그게 그리 쉽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동기생들 중에는 학교를 많이 못 다닌 친구들이 많은데, 우리보다 연배 많은 분들은 더욱 그렇다. 그 사람들은 대개 시절을 탓할 뿐, 부모를 원망하기보다 맨몸으로 열심히 살았다. 필자는 학교를 좀 다녔는데도 열심히 공부 안 하고 부모님 속을 상하게 한 죄가 참 크다.

우리 또래 사람들이 행운인 부분이 있다. 가파른 경제성장기여서 뭐든 열심히만 하면 기반을 닦기가 쉬웠다. 지금처럼 금수저와 흙수저로 구분될 만큼 편차가 크지도 않았다. 그 덕분으로 자식들은 많이 배웠고, 부모 세대보다 똑똑하고 능력도 갖추었다. 좋은 점만 경험한 세대는 물론 아니다. 한 푼이라도 아끼면서 홀로 일어서야 했고, 아이들 키우면서 부모 공양은 물론 동생들 뒷바라지도 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수시로 시골집 드나들며 농사일을 도왔고, 조상님 모시기와 어른들 챙기는 일에도 골몰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젊은 날에 바라보던 부모의 자리에 자신이 앉게 되었다. 제 앞가림에 바빴던 시절에 미치지 못했던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곤 했다. “한여름 뙤약볕을 머리에 인 채 호미 쥐고 온 종일 밭을 매도, 그 고된 일 끝에 찬 밥 한 덩이로 부뚜막에 걸터앉아 끼니를 때워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로 시작되는 시를 되뇌면서 어머니께 미안해했다.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라는 시를 읊으면서 아버지의 가슴앓이를 짐작하곤 했다.

맹자가 남긴 ‘군자삼락’이라는 말이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킨 그는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그 중 “부모가 살아 계시고 형제간에 탈이 없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고, 행하는 일이 떳떳하여 하늘과 땅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이 두 번째 즐거움이며, 천하에 재주 있는 사람을 모아 가르치는 일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고 했다. 통일된 나라의 임금이 되는 것은 여기에 끼지 못했다. 그만큼 부모를 평안하게 잘 모시는 것이 큰 즐거움이지만 아무에게나 그런 즐거움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부모가 안 계신 세상은 자주 허전하다. 거기다가 형제마저 떠나면 더욱 쓸쓸하고 외롭다. 다만 속내를 쉬 드러내지 않으려 할 따름이다. 사람의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어찌 그 고마움을 잊을 것이며, 같은 부모를 둔 형제이니 내 살만 꼬집어 아프다고 하랴. 그러나 이런 생각은 삶의 구조가 바뀐 지금은 많이 엷어졌고, 애지중지 길러준 수고도 부모의 마땅한 의무라는 시각이 높아졌다. 자식이 성인이 되면 독립된 개체이니 부모와의 의존 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논리도 다수가 수긍하는 분위기다.

흐름이 이러하니 자식에게 예우받기는 애당초 글렀다. 차세대 사람들은 자의식도 강하고 결혼을 하지 않아서 부모 속을 끓이는 경우도 많다. 자식이 손수 차린 생일상 받는 경우는 아주 드물고, 제대로 된 제삿밥 얻어먹기도 어려울 듯하다. 대접은커녕 거꾸로 손자 돌보느라 힘들고, 된장이나 김치, 밑반찬 해대느라 애쓴다. 빠르게 바뀐 사회 구조와 교육제도, 맞벌이 부부 등 생활환경이 너무도 달라져서 생긴 일이니 자식 탓을 할 수도 없다. 가정을 꾸려서 저들끼리 소리 없이 살고 부모를 존중해 준다면 그것이 효도가 아니리요.

시간이 멈추지 않으니 어찌 세월을 붙잡을 수 있겠는가. 눈감을 때까지 끊임없이 과제가 주어진다는 것도 새삼 깨닫는다. 몸을 꾸준히 움직여야 하고, 시간 관리에 소홀하면 안 된다. 좀 더 늙으면 각종 질병도 이겨내야 하고, 적절하게 타협도 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는 여러 가지로 미루어 아버지보다는 예우가 좀 낫다. 그런고로 아버지가 자식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그들의 어머니를 더 많이 사랑하는 것임을 명념할 일이다. 아내여, 은퇴 후 도생(圖生)의 길에 선 내 늙음에 그대의 위로와 지지가 필요하오.

<이정호 수필가, 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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