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산책]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자 하는 사회
[대학가 산책]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자 하는 사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5.0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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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나이 40세가 지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태어난 얼굴이야 어쩔 수 없지만, 사람은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애오욕(愛惡欲) 등 칠정(七情)이 표정근육을 통해 얼굴에 드러난다. 따라서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는 40여 세 정도가 되면 본인이 주로 가졌던 마음가짐의 칠정(七情)이 점차 자주 사용하는 특정 표정근육을 발달케 하여 한 사람의 인상을 만들고 결정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필자의 얼굴은 어떠할까?

필자는 가끔 서울에 일이 있어 서울역에 가면 습관적으로 땅을 보며 걷는다. 이는 서울역에서는 가능하면 사람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그동안의 습관이 만든 결과이다. 서울역에서 필자가 두리번두리번하면서 길을 가면 필자에게 말을 거는 부류는 크게 두 부류이다. 첫 번째 부류는 필자의 인상이 좋다고 말을 걸면서 도(道), 기(氣), 혹은 특정 종교 등에 관한 본인의 생각을 필자와 강제로 공유하고 싶어 한다. 그 부류들은 대부분 2명씩 짝을 지어서 돌아다니며 가끔은 필자가 원치 않는 팔짱을 소리소문 없이 끼며 접근함에 따라 필자가 꺼리는 부류이다. 두 번째 부류는 전투복 혹은 한복을 입고, 선글라스 혹은 태극기 등으로 패션 혹은 의지의 완성을 추구하는 듯한 개성으로 필자에게 말을 거는 부류이다. 두 번째 부류 역시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하지 않으면 쉽게 길을 터주지 않음에 따라 마주치고 싶지 않은 부류이다. 그래서 서울역에 도착하면 지하철을 탈 때까지 땅을 보며 무척 빨리 걷는 습관이 생겼다. 결론적으로 최근에는 이러한 부류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고 느껴진다. 즉, 남의 얘기는 듣지 않고 본인의 이야기만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필자는 학생들이 입학하면 제일 먼저 이런 이야기를 하며 강의를 시작한다. 오늘 아침에 스마트폰으로 SNS를 한 사람을 물어보면 대부분 손을 든다. 그럼 어제 본인이 SNS에서 본 내용을 지금 기억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어제 본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우리는 SNS에 무척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있는데, 왜 우리 기억에 남은 것은 없고 모두 소비되어 버린 걸까를 물어보면 고개를 기웃기웃한다. 필자가 알기로는 대형 SNS를 운영하는 회사들은 고객이 SNS를 통해 보인 반응들, 예를 들어 ‘좋아요’를 누른 글, 답글을 단 사람 및 내용, 각 글에 머무른 시간 등을 모두 수집한 후 학습을 시켜 고객이 좋아하는 내용만 제공한다고 한다. 필자도 최근 OO 인터넷 사이트에서 노트북을 구매하려고 몇 가지 모델을 검색해 보았더니, 해당 사이트에서 나간 이후에도 광고로 노트북 특별판매 등의 정보가 자꾸 따라다니는 것을 보고 묘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결국, 점차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실제 사회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나만의 세상에서 살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주제가 개인 맞춤형 서비스인데, 이것이 오히려 개인을 사회에서 고립시키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든다.

조만간 있을 대선을 앞두고 날선 공방이 한창이다. 대선 후보들 간 혹은 소속 정당 간의 공방을 지켜보면 모두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는 것 같다. 유사한 사안에 대해 상대방 후보자 혹은 자식이 행했으면 아주 파렴치한 행위이자 꼭 검증이 필요한 사항이고, 우리 당 후보자 혹은 배우자가 저지른 일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그리고 지나간 일이므로 중요하지 않다는 식이다. 특정 후보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행태도 크게 차이는 없어 보인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먼 옛날의 시집살이는 보고도 못 본 체, 듣고도 못 들은 체, 말없이 살아야 한다고 해서 시각장애인 3년, 청각장애인 3년, 언어장애인 3년의 세월을 보냈어야 한다고 하는데, 최근 들어서는 내가 보기 싫은 것은 안 보고, 듣기 싫은 것은 안 듣고, 말하기 쉬운 것만 말하는 형태로 우리 사회의 진화가 이루어진 모양이다.

보기 싫더라도 보고, 듣기 싫더라도 듣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라도 말하는 것이 소통이 아닌가 생각된다. 10여 년 전부터 소통의 부재가 우리 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속해서 제기되어 왔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한 번 갈등이 시작되면 상대방을 전혀 바라보지 않으며, 심지어 봉합도 어려운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사회가 이렇게 된 원인이라도 알면 좋으련만, 쉬이 손에 잡히는 원인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펜을 끄적거리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사실이 있다. 부부 사이에 점점 말이 없어지는 것은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했다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경지에 도달한 것일까? 아니면 무관심이 깊어지는 걸까? 오늘 퇴근할 때는 아내가 좋아하는 치킨이라도 사서 들어가야겠다.

참 아내가 요즘 다이어트 중이었나?

<안남수 울산과학대학교 안전및산업경영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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