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베팅
트럼프의 베팅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3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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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만나이로 70세인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1946.6.14~)는 정통파 정치인이 아니다. 한국인의 눈에 비친 트럼프는 부동산 장사로 떼돈께나 번 부동산개발업자에 지나지 않는다.

기질 면에선 사업가요, 노리는 건 장삿속이란 말이 그래서 나온다. 세계 최강의 완장을 꿰찬 뒤로도 그의 장사치 속성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양 변하지 않고 있다.

장삿속을 못 버리는 게 아니라 안 버리는 것이 참으로 골칫거리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형 지구본을 돌리면서 ‘어디 돈 될 게 없나’ 하고 광기 어린 눈으로 두리번거리는 게 그의 일과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다.

트럼프의 승부사 기질, 갬블러(gambler) 기질은 필시 타고난 것이 아니겠나 싶다. ‘영웅호색(英雄好色)’의 객기는 버린 적이 없어 보이고, 노름꾼으로 치면 ‘타짜’ 저리가라고 할 것만 같다. 서양식 카드로 하는 ‘트럼프(playing card)’ 놀이에서는 베팅(betting) 실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말도 있다.

그런 그에게 요즘 ‘정치적 베팅’ 상대가 나타났다. 대통령 유고(有故) 상태가 40일이 넘는 만만하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이다. 그는 이른바 ‘사드 비용 청구서’란 것을 권한대행 체제의 한국에 들이대며 10억 달러를 당장 내놓으라는 듯이 으름장을 놓는다. 후보 시절의 약속을 실천에 옮기겠다는 투다.

그의 공갈·협박성(?) 으름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흔적 지우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그는 ‘한미 FTA’를 오바마가 저지른 ‘끔찍한 협상’이라며 ‘백지화 카드’를 보란 듯이 꺼내든다. 필자의 지인이자 시각장애인인 정화원 전 국회의원(제17대, 한나라당 비례대표)이 들었다면 ‘눈에 뵈는 게 없나’ 하고 핀잔이라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친근감의 표시로 ‘저는 눈에 뵈는 게 없습니다’라는 농담을 즐겨 사용했다.)

전자도 후자도 모조리 트럼프 특유의 장삿속에 기인한 것이라는 주장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사드 비용 청구서’ 하나만 해도 ‘10만 달러’라면 1달러=1천140원으로 치더라도 무려 ‘1조 1천400억원’이란 천문학적 숫자가 튀어나온다. 한국은 부지만 제공하고 나머지 비용은 미국이 댄다고 약정서에 명시했다더니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여기서 흥미로운 추론을 하나 이끌어낼 수 있다. 트럼프가 부동산개발업자일 때도 계약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방법이 이랬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아무리 쌍방의 신의·성실을 바탕으로 작성한 계약서라도 상대방의 약점이 티끌만큼이라도 보이면 언제든지 무효화시킨다는 것이 ‘장사꾼 트럼프’의 압박전술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약점, 허점을 누가 트럼프에게 내보였을까? 믿고 싶진 않지만, 항간에는 우리 정부가 ‘알 박기용’ 혹은 ‘19대 대선용’으로 내놓은 거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급기야 우리 정부는 미국정부 고위층의 발언까지 인용해 가며 급한 불 끄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친다’는 이른바 ‘성동격서(聲東擊西)’ 전술 냄새가 짙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트럼프가 사드를 지렛대 삼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하는 중이라고 보는 것이다.

트럼프의 베팅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그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8·15 광복 직후 극심한 좌우(左右) 이념대립 속에 정국이 혼란의 극으로 치달았던 시절, 우리 사회에선 한동안 이런 말이 유행했다.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자!”. 트럼프의 자국이익(自國利益) 중심의 베팅 소식에 한 번 해본 소리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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