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놀아야 잘 큰다’
‘잘 놀아야 잘 큰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20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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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여느 오케스트라 명곡을 들을 때처럼 엔도르핀을 솟아오르게 만들어 준다. ‘저 아이들이 어느 날 하루는 공부 걱정 없이, 또한 어른들의 개입 없이 하루 종일 저렇게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놀게 해 줄 수는 없을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이것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원으로서 정말 엉뚱한 생각일까?

지난 2015년 말 교육계획 수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2016학년도에는 아이들에게 놀이할 시간을 만들어주고 짧은 시간이나마 맘껏 놀게 해 주고 싶다는 학교장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놀 시간을 만들어야 하니 1~2교시 수업은 블록타임으로 쉬는 시간 없이 진행하고 2교시를 마친 후 30분을 확보하는 것과 그 시간에는 모든 아이들이 무조건 운동장에 나가서 노는 것이었다. 그런데 선생님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교장선생님, 아이들을 통제하지 않고 맘껏 놀게 하는 건 좋지만 그러다 다치거나 다툼이 일어나면 1차적으로 담임교사가 학부모를 응대해야 하는데 저희는 그게 너무 힘듭니다. 또한 제 아이가 그렇게 놀다가 다쳐도 엄마 입장에서도 찬성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활동을 위해 학교장으로서 많은 준비를 해 왔고 이미 학교 놀이시간을 운영하는 타 시도의 몇몇 교장선생님들의 의견과 성공사례도 찾아 두었다. 그래서 성공사례 중에 가장 맘에 와 닿았던 다음과 같은 의견도 제시하였다.

“경기도 모 초등학교는 이미 3년 전부터 이러한 시간을(놀이시간을) 아이들에게 제공하였는데 처음엔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와서 어디서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할지 몰라 그냥 무조건 뛰어다니는 아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아이 등등 뭔가 허비하는 시간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또한 고학년 남학생이 운동장을 모두 차지하고 축구를 하는 바람에 그나마 빈둥거릴 장소도 만만치 않은지 이 구석 저 구석에 모여 있더니 1개월 정도 지나니 각자 학년 놀이 구역이 정해지고 6개월이 지나니 3~4학년이 5~6학년 형들에게 ‘왜 형들만 운동장을 다 차지하느냐’고 따지고 시정을 요구해 오더랍니다.

그래서 학생회의에서 ‘너희들끼리 협의를 해 봐라’ 했더니 자연스럽게 축구를 할 수 있는 날짜를 학년별로 요일을 정해서 사용하였으며 시행 첫해 놀이를 조사한 결과 아이들의 놀이개수는 4가지였지만 3년이 지나고 조사하니 38가지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기회를 주어서 뭔가 놀이도 만들어 보고 같이 부대끼다 방법을 찾는 등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줍시다.”

“교장선생님, 그 학교는 학생수가 600여 명에 불과하지만 우리 학교는 1천명이 넘습니다.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체육관, 학교 뒤편 공간, 운동장을 학년군별로 나누고 요일도 정하고 관리하는 담당교사를 배치해서 놀게 하는 걸로 결정했고, 현재 2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서는 경기도 모 초등학교와 같이 문제 상황도 생기지 않았고, 스스로 해결할 일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쉽긴 하지만 오늘 운동장을 바라보는 학교장의 귀에는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30년 전만 해도 어른이 만들어 주지 않아도 아이들이 모여서 놀 수 있는 마을 놀이터가 있거나 이 산 저 산, 골짜기든 작은 시냇가에서든 비슷한 또래끼리 모여서 놀 수 있는 기회와 장소가 있었다. 또한 아이들은 놀면서 스스로 규칙도 만들고 놀이방법을 변형해 가면서 서로 토의하고 양보하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어떤가? 대부분 컴퓨터로, 스마트폰으로 혼자 놀거나 그나마 놀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하다.

‘잘 놀아야 잘 큰다.’

우리 아이들이 정말로 잘 놀 수 있도록,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모여서 같이 놀 수 있도록 학교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시간과 장소를 만들어 주어야 이 아이들이 커서 서로가 소통하고 배려하는 밝은 사회를 만들어가지 않을까? 또한, 마을의 어디에서라도 저렇게 아이들이 모여서 행복한 웃음소리를 만들어 내지 않을까 생각에 잠겨 본다.

정기자 매산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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