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석 열사 추모비와 4·19정신
정임석 열사 추모비와 4·19정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1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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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4월 19일)는 4·19혁명 57주년 기념일이었다. 57년 전의 일인지라 청소년은 물론 40∼50대까지도 이 날이 어떤 의미를 지닌 날인지 대선 주자들이 메시지라도 남기지 않았다면 까맣게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4월 혁명’, ‘4·19의거’라고도 부르는 ‘4·19혁명’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장기집권 음모에 따라 자유당 정권에 의해 1960년 3월 15일에 저질러진 3·15 불법·부정선거가 그 불씨였다. 그 해 4월 19일 3만 명 가까운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전국적으로 166명이 숨지고 1천명이 넘게 다쳤다. 일주일이 지난 4월 26일, 이승만은 마침내 하야를 선언하고 하와이 망명길에 오른다. 그러나 그 해 5월 16일 박정희 육군소장이 주도한 5·16군사쿠데타로 허 정 과도정부가 단숨에 무너지고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대의 막이 오른다. 4·19혁명을 ‘미완의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19혁명의 불씨는 울산에도 지펴졌다. 비록 객지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북구 농소면 천곡리에서 태어난 한 대학생의 정의로운 죽음 때문이었다. ‘정임석 열사 추모사업회’(회장 박기수 북구문화원장, 사무국장 정치락 시의회 운영위원장)에 따르면 4·19혁명 당시 한양대 공대 2학년생이던 정 열사는 ‘학생 대표로 시위대에 앞장섰다가’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4월 25일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그의 주검은 유족의 뜻에 따라 4·19혁명 희생자 중 유일하게 국립묘지가 아닌 현재의 고향 묘역(북구 천곡동 순금산 중턱의 선영)에 안장됐고, 장례는 울산군민장으로 치러졌다.

매년 4·19혁명 기념일마다 추모제례를 올리고 있는 정임석 열사 추모사업회가 올해는 기념비적인 일을 하나 더 해냈다. 북구로부터 구비 지원을 받아 추모비를 세우고 그 제막식을 추모제례와 같이 거행한 것이다. 박기수 추모사업회장은 이날 “앞으로도 추모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면서 “정 열사의 묘역이 울산시민들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정 열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새기고 4·19정신을 기리자는 다짐이었다.

4·19혁명의 정신은 ‘자유, 민주, 정의’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4·19정신으로 무장해 미완의 혁명을 완성하는 것은 ‘탄핵 정국’을 ‘희망 정국’으로 바꾸는 시대정신의 발로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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