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
4월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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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은 제98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다. 1919년 3·1운동 정신을 계승해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 나라의 자주독립을 이루고자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 선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역사적 의의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제정한 국가 기념일이다.

흔히 우리는 임시정부 하면 중국 상하이에서 백범 김구 선생에 의해 운영되었고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정도로 알고 있으나, 기념일이 언제인지 그리고 임시정부의 성립과정과 활동 등은 자세하게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태동은 1910년 국권을 상실한 후 10년이 지난 1919년 4월 11일∼12일로 거슬러 오른다. 이 양일간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에서는 제1회 의정원 회의가 열렸고, 의정원 회의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할 것과 연호, 관제, 임시헌장 등을 심의·의결했으며, 이를 같은 해 4월 13일 국내외에 선포하여 역사적인 임시정부가 성립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 정부의 국호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대한민국’, ‘조선공화국’, ‘고려공화국’ 등의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대한’은 일본에게 빼앗겼던 국호이니 이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선택했고, ‘민국’은 중국이 혁신적인 의미로 이 칭호를 사용하니 우리도 ‘민국’으로 하자는 의견이 있어 선택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대한민국’은 이렇게 해서 탄생된 것이다.

당시 임시정부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외에도 노령지역의 대한민국 의회정부, 한성임시정부 등 총 6개의 임시정부가 있었으나, 학자에 따라서는 7~8개의 임시정부가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크게 3개 시대로 구분한다. 첫째는 상하이의 초기시대(1919~1932)이고 둘째는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로 항주, 진강, 장사, 광주, 유주, 기강 등지로 피해 다닌 8년간의 이동시대(1932~

1940)이다. 마지막은 1940년 중경에 정착하여 광복 시까지 광복군을 창설(1940년 9월 17일)하고 대일 선전포고(1941년 12월 9일)를 하는 등 국권 회복을 위하여 실질적인 독립운동을 했던 시기로 나뉜다.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임시정부는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게 되어, 세계 식민지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저항한 우리 민족의 대표 기관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정 정부였던 임시정부 수립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당시 임시정부가 지향했던 세계평화와 국민의 평등, 그리고 자유권 보장 등의 기본정신은 우리 대한민국의 국가 이념으로 계승되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현실적 영토와 국민’을 가지지 못했고 대내외적으로 ‘독립적 주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 민족이 최초로 왕정이 아닌 공화정으로, 독재체제가 아닌 민주체제로 정부를 운영한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비록 ‘임시’라는 두 글자가 붙었고 실제로 전쟁을 수행하여 조국의 광복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임시정부 27년간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악조건을 무릅쓰고 국권 회복을 위해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한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의지, 그리고 일치단결된 모습을 한곳으로 집결시켜 보다 조직적인 독립운동으로 계승·발전시켰다. 바로 여기에서 각별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8주년을 맞는 해이다. 임시정부 수립 98주년을 맞아 오직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대한민국이라는 큰 대의를 가슴에 품고 목숨과 젊음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가상현 울산보훈지청 보훈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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