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마. 그 기묘한 일의 고찰
파마. 그 기묘한 일의 고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3.2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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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핀컬 파마를 하고 학교에 왔다. 우리는 친구를 빙 둘러싸고 친구의 머리 스타일을 구경했다. 어제까지 이마를 덮은 친구의 앞 머리칼은 날렵한 곡선을 그리며 윗머리에 살짝 올라앉아 있었다. 친구의 앞 머리칼은 친구의 손길이 지나가는 대로 척척 움직였다. 친구의 반듯한 이마를 드러내는 데 핀컬 파마만큼 탁월한 시술은 없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소위 아줌마 머리처럼 심하게 뽀글거리지도 않고 손질하기 좋을 정도로 구불거리고 흡사 곱슬머리 같은 적당한 웨이브를 가지고 있었다. 관건은 학생주임을 비롯한 선생님들이 눈치를 채느냐 마느냐였다. 다행히 친구는 교문을 통과할 때 학생부 선생한테도 지적받지 않았고, 담임선생님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조회 시간을 넘겼다.

친구의 용기(?) 넘치는 행위가 우리는 마냥 신기했다. 부드럽게 넘어간 앞 머리칼 덕분인지 친구의 얼굴이 마냥 예뻐 보였다. 쉬는 시간마다 우리는 삼삼오오 친구 곁에 모여서 친구의 머리칼을 구경했다. 급기야 어느 친구가 “우리도 하러 가자!”라는 말을 했다. 그때부터 교실과 우리 마음은 들썩이고 술렁였다. 그날 친구들 몇몇은 의기투합, 친구를 앞세우고 미용실에 갔다. 나를 포함한 대략 예닐곱 명쯤 되는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미용실 거울 앞에 앉았다. 머리칼을 자를 때 앉았을 때보다 백 배 두근거렸다. 핀컬 파마가 완성되고 얼굴이 하나둘 달라질 때마다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미용실 거울 앞에 들러붙어 이리저리 머리칼을 넘기며 깔깔거리며 세상을 얻은 듯 우쭐댔다.

그 다음날, 나는 일부러 이른 시각에 등교했다. 학생부 선생의 눈길에 띄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그런데 그날 하필 학생부 선생이 담당하는 과목 수업이 잡혀 있었다. 급기야 어떤 친구가 학생부 선생의 눈길에 띄었다. 평소와 너무 달라지게 예뻐진 친구의 얼굴이 화근이었다. 발뺌하는 친구의 머리칼에 선생은 분무기로 물을 쏘았다. 물을 먹은 머리칼은 길이가 확 줄어 이마 위에 찰랑거렸고, 더 곱슬곱슬해졌다. 선생은 친구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으르렁거렸다. 붉은 낯으로 친구는 선생 앞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떨어뜨렸다. 선생은 우리 반 전체 학생들의 면면을 매의 눈길로 살폈다. 몇몇이 지적을 받았다. 다행히 나는 걸리지 않았지만, 선생은 함께 핀컬 파마를 하러 간 모든 학생의 명단을 원했다. 결국, 미용실 거울을 보며 낄낄거리던 우리는 모두 교실 뒤로 끌려 나갔다.

선생은 일렬로 선 우리의 머리칼에 분무기로 물을 쏘았다. 우리의 앞 머리칼이 줄줄이 꼬불거렸고, 선생은 우리에게 다음 날까지 원상복귀하지 않으면 교칙에 따라 처벌받을 것이라는 엄포를 내렸다. 아마 핀컬 파마를 함께한 친구 중에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섞인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방과 후 우리는 다시 미용실로 갔다. 곧게 편 앞 머리칼은 다시 좁은 이마를 덮었고, 반대로 구겨진 마음은 펴지지 않았다. 외모를 바꾸는 일에 누군가의 통제를 받는 일의 불쾌함은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이렇듯 파마는 내 청춘의 빛과 어둠의 한 장면으로 남았다.

두 달에 한 번 혹은 석 달에 한 번은 미용실에 간다. 여자는 죽을 때까지 꾸며야한다는 둥, 외모를 가꾸지 않는 여자는 자신을 포기한 거라는 둥 말이 많지만 나는 미용실에 가는 일도 외모를 꾸미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파마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한번 시작한 파마는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스토커처럼 끈질기다. 이리저리 제멋대로 뻗치는 머리칼이 생긴다 싶으면 파마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요즘은 파마와 더불어 염색까지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파마하는 시간과 공간은 참 기묘하다. 비싼 돈을 주고 파마를 하러 가는 손님도, 자격증을 따야 가능한 직업인 미용사 사이에서는 소위 갑과 을의 관계가 얽히고설킨다. 미용실의 인테리어와 스타일도 천차만별이고 미용사의 솜씨 또한 제각각이다. 단골 미용실을 정하는 일은 마음처럼 쉽지도 않다. 머리칼은 잘 자르지만 파마하는 솜씨는 영 시원찮고, 머리를 감기는 손길이 억세서 가기 싫은 경우도 생긴다. 얼굴에 수건을 올려놓고 샴푸를 받는 시간, 뒤로 젖힌 목에 닿는 서늘한 기운에 놀랄 때가 있다. 환한 홀과 달리 머리를 감는 곳은 축축한 기운이 서려 있고 어두침침한 까닭이다. 미용실을 배경으로 하는 공포 소설을 쓰리라 마음먹은 작가는 과연 나뿐일까. 이렇듯 내게 미용실은 신기하고 이야기가 숨은 공간이다.

요즘엔 파마하러 가는 시각을 예약할 수 있어서 편리해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파마하는 시간은 마냥 기다리기 일쑤였다. 지난 잡지 몇 권을 읽어도 내 차례는 돌아오지 않고, 미용실에 가득한 파마액 냄새 때문에 머리가 어질어질할 때쯤 미용실 거울 앞은 내 차지가 된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따로 있지만, 섣불리 미용사에게 말을 할 수도 없다. 대부분 미용사는 내가 하는 말에 족족 사족을 달고, 자신의 미용 지식을 뽐내기에 골몰하기 때문이다. 결국, 미용사의 전문가적(?) 견해와 손길대로 내 머리 스타일은 이리저리 휩쓸린다. 파마액으로 가득한 집안의 공기를 바꿔놓는 일은 파마의 최종 단계이다.

타인을 위해 파마를 하는 것인지 내가 나를 못 참아서 파마하는 것인지 모호하다. 둘 중 어느 것이든 간에 누군가에게 나를 맡기는 일은 여전히 낯설고 지루한 시간이다. 그나저나 청와대를 나온 그녀의 첫 파마는, 올림머리 스타일은 언제부터였을까. 그녀의 한결같은 올림머리 스타일,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녀의 이미지. 그런 이미지로 굳은 것이 그녀의 인생을, 나라의 상황을 작금의 시국으로 변하게 한 단초는 아닐는지 라는 괜한 생각마저 든다. 파면당한 후에도 전용 미용사 자매를 불러대는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녀의 올림머리 스타일은 헌법재판관의 헤어롤 사건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진절머리가 난다. 그녀가 이제 파마든 염색이든 모든 이미지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아니 모든 여자가 파마와 염색, 옷차림, 외모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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