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길]‘식객’에도 나오는 안전사고
[돌담길]‘식객’에도 나오는 안전사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3.2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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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의 만화 ‘식객’을 보면 발골사가 등장한다. 발골사란 먹기 위해 도살된 소에서 등심, 안심, 갈비 등 각 부위별로 고기를 도려내고 뼈를 발라내는 사람을 말한다. 만화 속에서 그는 수십 년의 정형과 발골 경험으로, 소 한 마리 해체를 순식간에 해치우는 귀신같은 솜씨를 지니고 있다. 수십 년 칼을 쓰다 보니 온 몸이 칼 상처투성이고, 만화 속 주인공과 요리경연대회에 참가하지만 실수로 자기 칼에 본인이 다치게 된다. 이로 인해 경연대회에서 패배하는 장면이 안타깝지만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얼마 후 모 공영방송의 프로그램을 보고 만화 속 발골사가 다른 의미로 “진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직업교육을 소개하는 그 프로그램에서는 독일의 한 마이스터교에서 10대 청소년들이 배우는 발골 및 정형 과정이 소개되었다. 이때 너무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안전에 대한 인식과 교육이었다. 일단 모든 학생이 중세기사의 갑옷 같은 보호장구와 보호장갑을 착용한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 식객 만화에 나오는 사고 장면은 아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다음에 눈에 띈 것은 여러 다양한 장비들이었다. 부위별로 자르는 칼이 달랐고, 뼈를 발골할 때 쓰는 기구도 다양했다. 만화에 나오는 발골사는 조그만 칼 하나로 모든 발골 작업을 하던데.

세월호 사고 직후 몇몇 에너지회사의 안전사고 대비 태세를 점검하러 다녔다. 먼저 방문한 수도권 대형회사는 강당만한 중앙통제실의 큰 벽면을 가득 채운 초대형 전광판이 우선 시선을 끌었다. 실시간으로 에너지 사용량과 순찰차 위치도 표시되었으며, 유사시에는 소방서나 경찰서로 자동 콜이 된다고 한다. 이어 안전사고 대비 매뉴얼을 보고 그 두께와 시나리오에 또 한 번 놀랐다. 매뉴얼 두께가 예전 서울시 전화번호부만 했다. 그리고 매뉴얼 목차를 보니 안전사고 시나리오도 매우 다양했는데, 심지어 북한 공격에 대응하는 시나리오도 있었다. 하지만 목차를 보고 느꼈던 감탄은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각 시나리오별로 앞부분은 똑같은 용어정리로 채워져 있고 대응 매뉴얼도 거의 대동소이했다. 심지어 대부분 결론은 모두 배관 밸브를 잠그는 것으로 끝맺고 있었다.

얼마 후 지방에 있는 한 중소 에너지회사를 방문했다. 이곳 중앙통제실은 화려한 전광판은 볼 수 없었고, 유관기관과의 연락도 직접 전화를 이용하고 있었다. 안전사고 대응 매뉴얼을 점검했다. 당연히 수도권 대형 에너지회사에 비해 두께도 얇고 시나리오 수도 몇 개 안 되었다. 그러나 매뉴얼을 보니 대응방법이 모두 사진으로 되어 있었다. 소화기 사용법과 밸브 차단법이 모두 순서대로 사진으로 수록되어 있었다. “실제 상황에서 언제 글을 읽고 따라 합니까? 사진 보고 따라 하기도 힘든데…” 그곳 책임자의 설명이었다.

위의 두 가지 사례에서 느낀 것이 있다. ‘안전’은 여기저기에 ‘안전제일’이라고 써 붙이고, 아침마다 큰 소리로 안전 구호를 제창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안전 관련 매뉴얼을 두껍게 작성한다고 완벽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안전’은 구호 이전에 반드시 시스템과 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선진국에서도 안전사고는 발생한다. 그러나 동일한 사고가 재발되지는 않는다. 1995년에 있었던 진도 7.2의 고베 대지진 경우 가스 및 유류 누출에 의한 화재사고 피해가 매우 컸지만, 작년의 구마모토 대지진(진도 7.3) 때는 2차 화재사고는 거의 보고되지 않았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특히 안전 불감증에 쉽게 빠진다. 작년 울산지역은 연이은 지진과 차바 태풍 피해로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매우 높았다. 그러나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조금씩 이런 우려가 희석되면서 망각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안심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똑같은 실수를 절대 되풀이해선 안 된다. ‘유비무환’이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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